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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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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나의 백범 김구 되기
작성자 김세영(가재울고) 개최일 2017-11-17 조회 468

나의 백범 김구 되기

 

가재울고등학교

2학년 1반 김세영

 

한 인물의 삶을 작품으로 표현하려는 작가들은 흔히 몇 주, 혹은 몇 달, 심지어는 몇 년 동안 마치 그인 것처럼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하여 행동하고 사고하며 살아본다고 한다. 나도 백범일지를 읽는 내내 최대한 백범 김구가 되어 보려고 노력하였다. 나는 안동 김 씨 가문의 후손으로 백범 김구의 후손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부터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작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인물인지 또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어떤 일들을 하셨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인지 백범일지 표지를 넘기는 순간부터 독립운동가. 아니 나의 할아버지이신 백범 김구의 삶을 들여다보는 묘한 흥분감과 함께 나의 백범 김구 되기는 시작되었다.

 

김구. 호는 백범.

1876년 태어난 그의 이름은 창암이었으나 후에 창수로 개명하였다가 1911년 일제의 호적에서 떠난다는 뜻으로 이름을 구()로 바꾸고 호를 백범이라 하였다. ‘백범이란 가장 천한 계층인 백정의 ()’자와 평범하다는 뜻의 ()’을 합친 것으로 가장 낮은 사람을 뜻한다. 그의 삶의 여정은 불운하게 시작되었다. 그는 나라를 팔아먹은 조상 덕분에 몰락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호기심이 많은 개구쟁이 김구는 동네에서 많은 사고를 치며 지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그는 우리 집안이 왜 상놈 집안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고 집안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서는 글공부를 하여 과거에 급제하는 길 뿐이라고 생각하였다. 그 이후로 서당에 다니면서 글공부를 열심히 하였다. 서당에 가기 위해서는 험한 고개와 깊은 계곡을 넘나들어야 하는 어려움을 견뎌내야 했지만 그는 항상 최우등이었다. 그러나 정작 과거 시험장에서 많은 부정한 행위들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저런 방법으로 급제하는 것이 무슨 필요가 있으며 무슨 가치가 있는가에 대해 의문이 들면서 다른 길을 걷겠다고 결심하였다. 김구는 두문불출하고 관상공부에 매달렸다. 하지만, 자신의 관상에 모든 안 좋은 기운이 다 붙어 있는 것을 깨닫고 낙심하다가 어느 순간 관상 좋은 사람보다 심상 즉, 마음이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나도 요즘 관상에 관심이 생겼는데 이 부분을 읽고 관상이 어찌하든 간에 마음을 갈고 닦아 좋은 사람이 되어 살아가야겠다고 느꼈다. 이것이 나의 백범 김구 되기의 첫 번째 과제이다. 김구는 18살에 동학에 입도한다. 그는 제 2차 동학 농민 운동에서 황해도 지방의 지휘관으로 많은 동학교도들을 이끌었다. 이후 안중근 의사의 아버지인 안태훈 진사의 집에서 피신하면서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김구는 안진사댁에서 학자인 고능선을 만나게 되고 고능선과 함께 공부하며 많은 깨달음을 얻는다. 고능선이 김구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자네가 마음 좋은 사람이 되려는 생각을 가졌다면 몇 번 길을 잘못 들어서서 실패나 곤란을 경험하였더라도 그 마음 변치 말고 끊임없이 고치고 나아가게.” 이 말은 김구처럼 살겠다고 결심한 나에게 하는 말 같아서 김구가 느낀 감정처럼 위안이 되었다. 포기하지 말고 끊임없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 이것이 나의 백범 김구 되기의 두 번째 과제이다. 김구는 김형진과 함께 청국의 사정을 살피고 동지들을 만나보기 위해 청국으로의 여정을 떠났다. 그러나 그 여정 중 그들의 행로를 방해하는 무수한 일들을 겪게 되었음에도 포기하거나 낙담하지 않고 원대한 목적을 품고 먼 길을 가는 사람이 사소한 잘못된 일을 마음에 둘 바 아니다.” 라고 하였다. 기나긴 내 인생을 살면서 사소한 일에 연연하지 않고 내가 세운 목표를 향해 묵묵히 나아가는 것. 이것이 나의 백범 김구 되기의 세 번째 과제이다. 1896년 그 유명한 치하포 사건이 일어난다. 김구가 치하포에서 같이 배를 탄 일본인이 조선인 행세를 하면서 옷 속에 칼을 숨기고 있던 것을 보고 그 왜놈을 명성황후를 시해한 놈이라고 생각하고 국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죽였다. 그 일로 인해 김구는 인천감리서에 투옥되었고 그는 신문 과정에서 오히려 당당하게 일본인에게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를 물으며 호통하였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그를 보러 면회를 오기도 하였다. 결국 김구는 3번의 신문 뒤에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 후 옥중생활을 하면서 많은 신서적들을 읽고 함께 갇혀있던 죄수들에게 문자를 가르쳐주기도 하였다. 1896102, 김구의 사형이 확정되었다. 하지만, 극적인 일이 일어났다. 고종의 재가를 받은 법부가 전보를 보내어 김구의 사형집행이 연기된 것이다. 그 후 인천재판소에 갇혀있던 김구는 탈옥을 한다. 그 후 기독교에 입문하여 애국계몽운동을 펼치다가 여러 독립 운동가들과 함께 신민회에 들어가 활동하던 중 안악사건으로 잡혀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 17년형을 받아 서대문감옥에 수감 되었다. 형기를 마치고 그는 고향에 돌아가 농촌계몽운동을 펼쳤고, 이후 3·1만세 운동이 한창이던 조국을 떠나 중국으로 망명길에 올랐다. 상해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을 때, 안창호의 권유로 경무국장을 맡았다. 임시정부를 이끌며 계속해서 독립운동을 하였지만, 재정악화와 일제의 탄압으로 순탄치 않은 길이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30여년을 분투하였지만,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고 생각하였을 때 김구는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으면 호랑이 새끼를 얻지 못한다.”는 말처럼 무슨 일이든지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뭐든 해보겠다는 그의 굳은 의지는 나의 백범 김구 되기의 네 번째 과제이다. 김구는 이봉창과 윤봉길의 의거도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로 인해 일본을 피해 숨어 다녀야 했지만 김구는 두 의사의 희생을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경제적 곤란 속에서 임시정부를 이끌어 가던 중 독립 운동가들은 민족주의자와 공산주의자로 나뉘게 되었다. 사상의 갈등으로 내부 분열이 일어났다. 김구는 민족주의 계열에 속했다. 하지만, 통일 문제로 논쟁을 할 때 김구는 하나의 민족이니 단일 통일을 주장하였다. 남의 도움도 받지 않고 남에게 의뢰도 하지 않는 완전한 자주독립의 나라를 세워서 한 민족으로 독립하는 것이 그의 소원이었다. 기나긴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조국으로 귀국할 때 정국의 주도권을 빼앗길 것이 두려웠던 미군정의 감시 때문에 김구를 맞이하러 나온 동포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내가 김구였다면 조금은 쓸쓸했을지도 모르겠다. 1946년 김구는 38선 이남 지방 순회를 시작하였다. 순회를 다니는 부분에서 그가 걸어온 자취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김구가 강연을 다닐 때 자신의 옛 제자를 만나는 부분은 특히 감동적이었다. 김구는 대한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일제의 손에 먼저 세상을 떠난 독립 운동가들의 시신을 찾고 그들을 기리기 위해 노력하였다. 마지막까지도 나라를 위해 열심히 싸운 그의 의지와 신념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백범일지를 접하기 전에는 책을 읽으면서 느낀 그대로 행하면 백범 김구처럼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백범 김구의 삶속에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나의 백범 김구 되기의 가능성은 백범일지의 남은 페이지 분량만큼씩 줄어들고 있었다.

 

백범 김구는 내가 생각한 것 그 이상으로 대단한 영웅이셨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중도에 포기 하였을 것이다. 나만 편하고 행복하면 되었지 독립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일제의 편에 섰을 수도 있었다.(실제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일본화 되지 않았던가) 그러나 김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나라를 위해 일제에 맞섰다. 자기 자신이 아닌 조국을 위해 온 일생을 바친 그의 삶은 보통사람과는 차원이 다른 숭고한 삶이라고 느껴졌다. 그의 후손으로서 또 한 민족의 구성원으로서 존경하고 또 감사드린다. 백범 김구는 우리나라가 일제에 의해 고통 받았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하셨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아니라 세계의 평화가 시작되는 가장 아름다운 조국!

 

이것은 나에게 큰 울림이 되었고 나의 앞으로의 삶의 이정표가 되었다. 남을 아프게 하지 않는 것, 또 남이 아파할 때 함께 하는 것. 이 마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내 자신과 가장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 그것이다.

나의 백범 김구 되기는 아직 진행 중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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