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대회

수상작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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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
작성자 김라희(중일고) 개최일 2026-07-06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


중일고등학교

2학년 5반 김라희

 

백범일지를 읽기 전까지 나에게 김구는 그저 역사 교과서 속의 한 인물이었다. 이름 앞에는 늘 독립운동가라는 수식어가 붙었고, 그 뒤에는 여러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 따라왔다. 그래서 나는 김구를 생각할 때마다 한 개인의 삶보다는 거대한 역사 속 상징을 먼저 떠올렸다. 나라를 빼앗긴 시대에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 해방 이후에도 분단을 막고자 했던 사람. 그 정도만으로도 김구를 존경하기에는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백범일지를 읽으면서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것이 있었다. 김구의 삶은 단지 나라를 되찾기 위한 투쟁만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그가 진정으로 묻고 있었던 것은 어떤 나라를 되찾을 것인가에 가까운 것 같다. 나라의 이름을 회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고, 그 나라 안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대우받을 수 있어야 했으며, 힘이 약한 사람도 함부로 짓밟히지 않아야 했고, 개인의 양심과 생명이 존중받아야 했다. 나는 이 지점에서 백범일지가 단순한 독립운동의 기록이 아니라 인간 존엄에 대한 책일 수 있다고 느꼈다.

 

처음에 백범이 김구의 호라고 하기에 나는 당연히 백범(白犯)인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본 사진 속에서 그는 흰 옷을 입은 기골이 장대한 모습이었기에 기개를 담은 흰 호랑이라는 뜻의 멋진 이름일 거라고 미루어 짐작했었다. 그러나 전혀 다른 뜻의 백범(白凡)이었다. 백정과 범부, 그 시대에 가장 평범한 사람들부터 천하고 낮은 곳에 있던 사람들까지 모두 아우르는 뜻의 이름이었다. 처음엔 그냥 지나쳤던 그 호가,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비로소 다시 보였다.

 

식민지 조선에서 조선인은 자기 나라의 주인이 아니었고, 일본은 조선인의 언어와 이름, 역사와 문화를 빼앗으려 했다. 이것은 단순히 영토를 빼앗긴 문제가 아니었다. 한 민족이 스스로를 설명할 권리, 자기 삶을 자기 언어로 말할 권리, 나아가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권리를 빼앗긴 일이었다. 식민 지배의 본질은 인간을 존엄한 존재가 아니라 지배와 이용의 대상으로 낮추는 것이기에, 김구의 독립운동이 단순한 정치적 투쟁을 넘어 인간적 회복의 의미를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의 소원 부분에서 언급했듯이 그가 원했던 나라는 단지 부강한 나라, 군사력이 센 나라, 남을 지배하는 나라가 아니라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진 나라였다. 처음에는 이 말이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졌다. 문화란 예술이나 학문, 전통 같은 것만을 의미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책을 읽을수록 김구가 말한 문화는 단순히 예술적으로 아름다운 것이나 뛰어난 문학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한 사회가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의 문제와 연결된 것 같았다. 사람을 도구로 쓰지 않는 사회,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사회, 힘이 아닌 도덕과 품격으로 사람을 움직이는 사회. 그런 사회가 바로 김구가 말한 문화의 힘을 지닌 나라에 가까운 것 아닐까.

 

이 관점에서 백범일지는 내게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인간의 존엄은 언제 무너지는가. 사람은 언제 사람으로 대우받지 못하는가. 그것은 식민지 시대처럼 누군가가 폭력을 행사할 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다른 이의 목소리를 듣지 않을 때, 한 사람을 그의 역할이나 신분, 능력으로만 판단할 때, 편리함과 효율을 이유로 한 사람의 고유한 사정을 무시할 때도 인간의 존엄은 훼손된다고 생각한다.

 

가치관을 가진다는 것이 모든 선택을 옳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김구도 그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무게를 회피하지 않고 평생 안고 살았다. 어쩌면 가장 낮은 사람도 중하다는 믿음은, 그 불편함을 잊지 않기 위해 더욱 단단하게 붙든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가치관이란 완벽한 사람이 완벽하게 지키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사람이 흔들리면서도 놓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생각을 하며 예전에 병원에서 느꼈던 장면을 떠올렸다. 할아버지와 함께 병원에 간 적이 있었는데, 진료실에서 의사 선생님은 치료 계획을 설명하면서 환자 당사자인 할아버지가 아닌 보호자인 어머니와 거의 얘기를 주고받았다. 물론 의사 선생님에게 나쁜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설명하고 보호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려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병의 당사자는 할아버지였고, 치료를 받는 사람도 할아버지였는데 정작 할아버지의 생각과 감정은 치료의 중심에 충분히 놓이지 못하는 듯했다. 나이가 많고 빠른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결정에서 밀려나도 되는가. 환자는 그저 치료의 대상일 뿐인가.

 

백범일지를 읽고 난 뒤 나는 그때의 기억을 조금 다르게 해석하게 되었다. 인간 존엄은 사회적으로 큰 사건이나 거창한 구호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병원 진료실 안에서도 인간 존엄은 시험대에 오른다. 환자를 그저 병명으로만 보는지, 나이 든 사람을 판단 능력이 부족한 존재로 단정하는지, 보호자의 편의나 의료진의 효율 때문에 당사자의 목소리가 무시되는지. 그 작은 순간들에서도 존엄은 지켜지거나 무너진다.

 

미래에 의학의 길을 가고자 하는 학생으로서 나는 의학이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는 기술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질병을 정확히 진단하고 치료하는 능력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생존 기간은 늘어났지만 환자가 자기 의사를 존중받지 못한다면, 치료 과정에서 계속 소외감을 느낀다면, 그는 과연 온전히 회복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은 생물학적 신체만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기억과 관계, 두려움과 희망, 자기 삶에 대한 판단을 가진 존재다. 좋은 의료인은 질병을 정확히 보는 눈과 함께, 환자를 한 사람으로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누구나 관념적으로는 인간은 존엄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바쁘다는 이유로, 어리다는 이유로, 늙었다는 이유로, 아프다는 이유로, 가난하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목소리는 쉽게 무시된다. 그래서 인간 존엄은 선언보다 실천이 어렵다. 나 역시 누군가를 존중한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그 사람을 내 기준으로 판단한 적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공부를 잘하는지, 일처리가 빠른지, 내게 이로운 사람인지 같은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친구의 마음을 충분히 기다리지 못한 순간들이 있었다. 백범일지는 그런 나의 태도도 돌아보게 했다.

 

오늘날 우리는 식민지 시대와는 분명 다른 시대를 살고 있지만 인간이 수단화되는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성과와 효율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사람은 점수, 등급, 실적, 비용으로 환산되기 쉽다. 병원에서는 환자가 진료 건수나 검사 수치로 보일 수 있고, 학교에서는 학생이 성적과 입시 결과로 평가될 수 있으며, 사회에서는 노인이나 장애인, 가난한 사람이 경제적 부담으로만 여겨질 수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백범의 문화국가론은 과거의 이상이 아니라 현재의 기준이 된다. 좋은 사회란 단지 빠르고 강하고 부유한 사회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쉽게 요약하지 않고 그의 목소리를 끝까지 들으려는 사회다.

 

백범일지를 다 읽고 나서 김구는 내게 더 이상 역사적 위인으로만 남지 않았다. 그는 흔들렸고, 때로는 틀렸으며, 자신의 선택을 끝까지 확신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 속에서도 가장 낮은 사람도 중하다는 믿음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내가 가고자 하는 그 길에서 만날 환자들을 생각할 때 할아버지와 함께 갔던 그 진료실이 자꾸 떠오른다. 병명보다 먼저 그 사람을 보는 의사, 효율보다 먼저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 그것이 거창한 다짐처럼 들릴 수도 있다는 걸 안다. 바쁜 현실 앞에서 그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도 분명 올 것이다. 그러나 김구가  자신의 믿음을 놓지 않았듯이, 나도 그 흔들림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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