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대회

수상작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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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백범의 길을 따라 걸으며 진정한 독립의 의미를 배우다
작성자 나윤진(금곡고) 개최일 2025-11-21

백범의 길을 따라 걸으며 진정한 독립의 의미를 배우다

금곡고등학교

3학년 4반 나윤진

백범 김구 선생의 자서전인 『백범일지』내용이 쉽지 않아 청소년이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 쓴 『쉽게 읽는 백범일지』를 함께 읽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정신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의 억압 속에서도 나라의 독립을 위해 한평생을 바친 한 인간의 뜨거운 삶과, 그가 남긴 신념이 이 책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백범 선생의 굳은 의지와 뜨거운 애국심이 마음을 울렸다. 그리고 그 감정은 백범 선생께서 활동하셨던 상하이, 항주, 충칭 등 임시정부의 발자취를 찾아 가는 여정을 내 버켓 리스트 맨 위에 적어 넣었다.

『백범일지』의 전반부는 백범 선생의 어린 시절과 청년기의 성장 과정이 나온다. 위인은 태어나면서부터 일반인과는 다를 것 같았는데 숟가락을 분질러 엿을 바꿔 먹거나 빨래터에서 물감을 풀어 동네 아녀자 분들에게 혼나고 집에 있는 엽전을 훔쳐 떡을 사먹으려고 의기 양양하게 자랑질하다가 아버지에게 혼나는 장면은 백범우리네와 그다지 다르지 않아 백범 선생이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다. 백범이 양잔들에게 아버지가 수모당하는 것을 보고 신분 제도라는 것을 이해하였는데 비록 상놈이지만 과거 시험에 합격하여 양반이 되려고 노력하는 부분은 매우 안타까웠다. 무모한 도전이라고 생각했는데 선생은 매우 진지하게 도전하였으며 문장을 대신 지어주고 글씨를 대신 써주는 감동적인 시험 부정 행위를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다는 것에서 교과서에서 배운 세도 정치하에 국가 기강이 무너진 현실을 잘 표현하여 당시를 이해하는데 매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좌절하지 않고 관상 공부를 하는 와중에 마애상서 한 구석에 나오는 글귀, 얼굴 좋은 사람보다 마음 좋은 사람이 되기를 결심한 것에서 선생의 진취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동학에 입교하여 사람이 하늘임이기에 누구나 평등하다는 것을 알고 열심히 활동하여 꼬마 접주에 이르게 되고 해주성 전투에는 소년 장군으로 활약을 하지만 숫자만 많은 오합지졸 군대는 적의 총소리를 듣고서 모두 흩어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진압군 측의 안태훈 진사가 소년 장군을 알아보고 자신의 집을 은신처로 제공하는데 그 집에서 안중근 형제를 만나는 것이 신기하게 생각되었다. 더군다나 그 집에서 자녀의 교육을 위해 특별히 초빙한 유학자가 고능선이었으며 이 분 역시 백범을 알아보고 벼랑에서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손을 놓아야 장부라는 ‘결단’의 중요성을 알려 준다. 특히 백범 선생이 일반인이 아니라는 것은 다음 장면에서 나온다. 치하포에서 변장한 일본인 스치다를 명성황후의 살인범이거나 관련자일 거라는 확신으로 목숨을 걸고 처단한 것에서 스승에게 배운 장부다운 결단을 실행하게 된다. 당시 모두들 일본이 남의 나라 국모를 시해한 것에 대해 분노하였지만 대부분 아무런 보복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치하포 사건이 을미사변 당시 유일한 분노의 의거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치하포 사건으로 알리지 않아도 아무 문제 없던 시절인데 자신의 신분을 밝혀 결국 인천 감리서로 가게 되었는데 여기에서 전국적으로 명성이 알려지게 된다. 감옥에서 억울하게 형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면서 이름을 알리게 되지만 결국 탈옥하여 전국을 돌아 다니게 되었는데 특히 공주 마곡사에서 승려 생활을 했다는 부분을 재미있게 읽었다. 당시 마곡사는 절 주변에 많은 농지를 소유하여 대지주 쯤 되고 그러다 보니 주지 스님이 되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 흥미 있었다. 더불어 오늘날 우리나라의 종교가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기반이 무엇인지 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백범 선생께서는 마곡사에서의 꽃길을 버리시고 다시금 나라를 구하기 위해 애국 계몽운동을 하시다가 안악 사건으로 다시 투옥 되었는데 다행히도 치하포 사건의 주동자인 것이 드러나지 않았는데 가슴을 졸이며 읽게 되었다.

감옥에서 삼년을 견디기 힘들다는데 선생은 잘 견디셔서 출혹하게 되었고 삼일 운동으로 어수선한 틈에 국외 탈출에 성공하고 상하이로 가셨고 임시 정부에서 문지기 역할이라도 맡아 딜라고 했다. 안창호 선생은 경무국장이라는 자리를 주셨지만 욕심없이 자신의 역할을 하는 백범 선생의 순수한 자세를 엿볼 숭 lT는 대목이었다. 상하이 임시정부는 백범에게 단순한 피신처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다시 세우기 위한 희망의 터전이었다. 『백범일지』에서 선생은 임시정부의 어려움을 솔직히 기록한다. 자금 부족, 내부의 의견 충돌, 외부의 압박 속에서도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현재 상하이 임시 청사를 영상으로 보며 앞그가 지켜낸 ‘조선의 혼’을 떠올리게 되었다. 나라가 없던 시절, 그들이 얼마나 간절히 ‘대한민국’을 꿈꾸었을지를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졌다.

책을 읽는 동안 국민 대표회의 이후 대부분의 독립 운동가들이 만주나 북경 등으로 떠나고 자금줄까지 끊겨 임시정부 청사는 거지 소굴 같다고 묘사한 장면을 읽을 때, 마치 그곳에서 활동하며 임시정부 청사와 백범 선생을 지켜보는 어느 이름 없는 독립운동가가 되어 좁은 골목 안에 온갖 향신료 냄새를 맡으며 끼니를 해결하고자 이 집 저 집 알아보고 다니는 내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일본군이 상해 사변을 일으키고 전승기념식과 천장절을 맞이하여 홍구 공원에서 기념식을 거행했는데 백범이 임시 정부의 특무 작업으로 비밀리에 조직한 한인 애국단 단원인 윤봉길 의사가 행사장에 잠입하여 군 수뇌부를 비롯한 일본의 요인들을 폭사시키거나 부상을 입히는 강력한 의거로 인해 임시정부 요원들에게 수배령이 내려지고 백범에게는 60만 대양의 막대한 현상금까지 내걸렸다. 이 때 임시정부가 항주로 피난했을 당시, 백범은 추적을 피해 저보성(추푸청)의 도움으로 자싱 매만가와 하이옌 재청별장의 은신처로 피난했다고 한다. 자싱의 매만가에서는 급박한 순간에 도망갈 수 있도록 바닥에 배와 연결된 비상구가 있었다. 겉에서 보기에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건물이었지만, 바닥을 걷어 사다리를 타고 내려 배를 타고 남호로 빠져 나갈 수 있다는 것에서 압박감과 긴박감이 느껴졌다. 김구에게만 걸린 현상금이 그때 당시 60만원, 오늘날 600억원이 넘는다니, 그 엄혹한 시절 속에서 임시정부의 상징으로서 막대한 책임감을 안고 도망 다녀야 했을 김구의 고단함과 외로움이 느껴지는 듯 했다. ‘백범일지’를 읽을 때마다 의미가 있는 곳이 궁금하게 된다.

충칭은 임시정부의 마지막 터전이자, 백범이 광복의 날을 맞이하기까지 머물렀던 곳이다. 『백범일지』의 후반부에서 김구 선생은 비록 굶주리고 병들었지만 결코 희망을 잃지 않는다. 그는 독립 후에도 ‘도덕이 바로 선 나라’를 세우고자 했다. “내가 원하는 나라는 남을 해치지 않고도 잘 사는 나라다.” 태극기 아래에서 그 문장을 떠올리자,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얼마나 값진 희생 위에 세워졌는지 절실히 느껴졌다.

『백범일지』는 한 인물의 자서전을 넘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삶의 방향을 묻는 거울 같은 책이다.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는 단지 독립운동의 기록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그는 나라를 위해, 사람을 위해, 그리고 정의를 위해 백년을 살아냈다. 난 지금도 역사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몇년 전 처음으로 어른들은 따라 중국에 갔을 때 이상할 정도로 어른들은 역사에 열광하고 있었다. 나에게 애국심과 그들의 업적을 부르짖는 것에 어릴 적엔 거부감이 덜했지만 후에 중학교 1학년 때 다시 그곳에 갔을 때 난 확실히 거부감이 들었다. 내 의지로 갔던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들의 저항과 조국을 되찾겠다는 신념은 본받을만 하다고 생각한다. 난 중국에 가서 상하이의 좁은 골목, 낡은 건물 앞에서 나는 그가 걸었던 길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진짜 독립’이란 단지 나라를 되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키는 것임을 배웠다. 지금 나는 입시에 허덕이는 학생이지만, 김구 선생이 보여준 신념과 용기를 마음에 새기고 싶다. 그가 그랬던 것처럼, 나 또한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다하며 살아가고 싶다.

『백범일지』를 덮은 후, 나는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어떤 신념으로, 어떤 나라를 꿈꾸며 살고 있는가?”

그 물음이 남은 한, 백범의 길은 지금 이 시대의 나에게도 계속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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