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대회

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내 일생 소원은…
작성자 김세종(만경중) 개최일 2025-10-28

내 일생 소원은…

 

만경중학교 

3학년 1반 김세종


한국에서 “백범 김구”라는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나 역시도 김구 선생을 전혀 모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잘 안다고 말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난 봄에 학교에서 김구 선생의 자서전에 대한 독후감쓰기 대회가 안내된 순간부터 기회가 되어 김구 선생의 일생을 담았다고도 할 수 있는 백범일지를 풀어쓴 “청소년을 위한 백범일지”를 읽어 보았다.

내가 딱 첫 페이지를 넘겼을 때, 온화하게 미소를 띠고 있는 그렇다고 가벼워 보이지 않고 무게 잡힌 모습의 백범 김구 선생의 사진이 날 맞이해 주었다. 한 장을 더 넘기자 백범의 스승인 유학자 고능선 선생이 보였고 장련 광진학교에서 찍은 사진, 경무국장 때의 사진 임시정부 신년 축하회 때의 사진 등이 보였다. 나는 사진들을 보고는 꼭 성장일지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사진들을 훑어보다가 내 시선이 멈춘 마지막 사진이 있었다. 그 사진의 설명은 이러하였다. “1949년 6월 26일 경고장에서 육군 소위 안두휘의 흉탄에 맞아 조국통일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눈을 감은 백범.” 나는 사진과 설명을 보고 깊이 묵념하였다. 이렇게 대단한 인물이 어찌 이렇게 일찍 서거 당하는가? 나는 독립운동가의 백범이 아닌 김구라는 사람의 인생을 보고 싶었다. 그러하여 페이지를 넘겨 본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의 초반은 그가 김창수라는 이름으로 살았던 청년기의 이야기다. 겨우 10대의 나이에 그가 이미 동학당의 접주가 되어 의병활동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나에게서 감탄을 자아내었다. 내가 만약 과거로 가 김창수와 같은 인생을 살았더라면 절대 저 정도로 대단한 일은 하지 못했을 것 같다. 또 인상 깊었던 것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독립운동에 투신하기 전까지는 그도 많은 방황을 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안 진사나 고선생처럼 총명하고 신망이 두터운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기는 했지만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감옥도 가고 스님도 되어본 김구는 내 생각에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며 방황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을 보고 김구와 나는 어느 정도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았다. 나도 미래의 진로의 대하여 많은 고민과 여러 가지 시도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의 이야기는 김구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령이 되고, 임시정부가 중국 안에서 이동한 일이나, 이봉창 의사의 의거, 윤봉길 의사의 의거의 대한 내용, 그리고 김구가 임시정부의 주석이 되는 일 등이 풀어 씌여 있었다. 이러한 내용들은 내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였고 때론 내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하였다.

나는 내 조국을 잃어 본 적은 없다. 얼마 전 위협받긴 했지만 내가 태어났을 때에도 나의 부모님이 태어나셨을 때에도 대한민국은 존재했다. 일제강점기처럼 차별대우를 받지도, 나라를 빼앗긴 서러움도 겪은 적이 없다. 그래서 내가 만약 일제강점기를 겪고 있는 중이라면, 일제의 탄압을 받아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면, 하는 상상을 해도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다. 내가 이토록 행복하고 나라를 빼앗긴 설움조차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모두 독립운동가 분들 덕분이다. 나는 김구를 비롯한 모든 독립운동가 분들에게 무한한 감사와 최고의 경의를 표하기 위해 매일같이 노력하고 있다.

우리는 이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며 절대 그 시절을 잊지 말고 가슴속 깊이 새기며 살아가야 한다. 책의 마지막 부분 즈음에는 대한민국의 독립 직전 상황부터 독립 이후 상황에 대해 간결히 작성되어있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자면 일본의 항복이다. 일본이 항복한다는 소식을 들은 김구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충격’을 받는다. 나는 의문이 들었다. 일본이 항복하면, 되려 춤을 추며 기뻐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지만 이유를 보니 납득이 갔다. 자주독립 때문이었다. 광복군이 작전을 펼쳐 전쟁에 참전했다면 우리나라는 승전국이 되어 통일한 나라를 세웠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고, 우리나라는 분단국가가 되었다. 김구가 왜 충격을 받았는지 알게 되니 나도 꽤 아쉬웠다. 만약 우리나라가 분단되지 아니하였더라면 한국전쟁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수많은 사상자와 이산가족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남과 북이 지금처럼 갈등을 빚지 않아도 됐을 것이고. 광복 이후 단일정부를 세웠더라면 아마 지금보다 월등히 발전한 강대국이 됐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배치된 “나의 소원”에서 자유에 대한 말들이 인상 깊었다. 김구는 자신이 원하는 나라에 대해 말하면서 자유를 강조한다. 그 자유는 자신만을 위한 자유가 아닌 사회와 이웃을 돕는 자유, 개인의 이익을 위한 자유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공익을 위한 자유이다. 요즘 같은 개인주의 사회는 예전 같은 ‘이웃간의 정’이 없다. 이웃끼리 잘 인사도 하지 않고 이야기도 잘 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여러 신조어도 생겼다. “욜로”와 “캥거루족”같이 자신을 첫 번째로 생각한다. 물론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부분도 있지만, 이런 사회 분위기는 좋지 않다. 그렇지만 이런 사회라도 남을 돕고 조금씩이라도 서로 인사하고 정의롭게 생각한다면 분명 언젠가는 이런 사회 분위기도 바뀔 거라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 가족부터 당장 나부터라도 한번 실천해 보는 것이 어떨까?

끝으로 하늘에 올라가 천당에서 조국 통일의 꿈을 꾸며 살고 있을 김구 선생에게 백범일지의 분위기와 김구의 고단한 삶과 잘 맞다 생각하여 내가 꼭 직접 들려주고 싶은 찬송가인 “내 주를 가까이 하게함은” 중 일부분을 적어 주며 마치겠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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