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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백범지기] 효창공원 기행문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3-08-14 조회 378
첨부파일 [수정]3.jpg


효창공원 기행문

2023년 백범김구기념관 서포터즈 ‘백범지기’

이호인

안녕하세요 2023년 백범김구기념관 서포터즈 ‘백범지기’ 이호인입니다. 4주차 미션은 ‘효창원 애국선열묘역의 역사와 공간을 소개하는 콘텐츠 제작하기’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백범김구기념관이 위치한, 그리고 백범 김구 선생을 포함하여 수많은 애국지사분들의 묘역이 있는 효창공원을 제가 직접 돌아보면서 찍은 사진과 함께 여러분들에게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효창공원의 정문 창열문

효창공원의 역사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효창공원은 원래 조선 왕실의 묘역이었습니다. 요절한 정조의 장자 문효세자, 세자의 어머니 의빈 성씨, 순조의 후궁 숙의 박씨와 그의 딸 영온옹주의 묘가 위치해 있었죠. 처음에는 ‘효창묘’로 불렸으나 1870년 고종때 ‘효창원’으로 승격되었습니다.

울창한 소나무와 밤나무 숲이 우거진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했던 효창원은 1894년 청일전쟁 때 일본군이 효창원 일대의 만리창에 주둔한 이래 점차 훼손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 시기,‘구용산기지’라 불린 효창원은 1921년 골프장이 세워지고(서울에 지어진 최초의 골프장이라 합니다.), 1924년 유원지가 조성되었으며, 독립군을 토벌하기위한 비밀기지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일제의 기념물들이 세워졌으며, ‘한일병합의 대업’을 영구히 기리기 위해 매년 4월 3일 총독부가 주관하고 조선총독과 정무총감이 참여하는 신무천황제의 식목행사지로 효창원이 3번이나 선정되어 일본의 국화 벚나무(사쿠라)가 심어지는 치욕을 겪기도 했습니다.

1940년, 총독부 고시로 정식 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1944년 일제는 효창원 내의 묘를 고양 서삼릉으로 강제 이장 하였습니다. 이렇게 효창원은 본래의 역사성과 가치를 잃어버린채 효창공원으로 격하되었죠.

해방 후, 일제의 상흔이 남아있던 효창공원은 백범 김구 선생의 노력으로 인해 독립선열의 숭고한 정신이 깃든 공간으로 탈바꿈하였습니다. 김구 선생은 환국 후 미군정에 효창원을 선열묘역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요청하였으며, 1946년 7월,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의 유해를 송환하여 국민장을 치르고 옛 문효세자 묘터에 안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세 의사의 묘소 곁에 안중근 의사의 가묘를 세웠습니다. 이어 1948년 9월, 동남쪽 언덕에 이동녕, 차리석, 조성환 선생이 안장되었으며, 1949년 6월 김구 선생이 암살된 이후, 국민장으로 서북쪽 언덕에 모시여 일대가 선열묘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효창공원의 수난은 계속되었습니다. 백범 김구선생과 민족 통일정책 등에서 이견을 보였던 이승만 대통령 시기, 집권 세력은 선열 묘소를 여러 번 이장하려 시도 하였습니다. 1956년 이승만 대통령은 백범 김구 선생을 비롯한 순국 선열들의 묘소 이장과 효창운동장 건립을 발표하였으나 강한 반대여론으로 인해 무산되었고, 1959년 6월 제2회 아세아축구대회(현 AFC 아시안컵) 유치가 확정되자 효창운동장 건립을 빌미로 다시 한 번 이장을 시도하였으나 독립운동가 심산 김창숙 선생을 중심으로 한 효창공원선열묘소보존회와 정치, 사회권의 반대로 무산되었습니다.(특히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자 대중매체를 통해 많이 알려진 김두한 당시 국회의원이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출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효창운동장 건립은 강행되었고, 이로 인해 효창공원 일부가 훼손되고 말았습니다. 5.16 군사정변 이후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 역시 1968년

묘소를 이장하고 골프장을 건립하려 했으나 유족들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집권 시기 효창공원 내에 건립된 반공투사기념탑과 원효대사 동상, 대한노인회관 등은 묘역과 동떨어진 시설물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후 1972년 서울시에서 효창공원 조경사업을 시작하였으며, 1984년 12월 각 묘표앞의 묘표석을 새롭게 개수하였고 1989년, 사적 제 330호로 지정됨과 동시에 의열사 및 창열문이 건립되었습니다. 현재 효창공원은 인근 주민들의 휴식 장소이자 다양한 시설을 통해 순국선열들의 헌신을 기억하는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효창공원 내의 시설들


백범김구기념관

앞선 게시물에서 소개해드린 백범김구기념관, 효창공원 내에 있는 백범김구기념관은 백범 김구 선생의 삶과 사상을 널리 알리고 계승하고자 2002년 10월 건립되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생애와 함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역사와 한국 근현대사를 배울 수 있는 전시와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순국선열들을 기리는 다양한 기념행사가 실시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봉창 의사 동상

일왕 히로히토의 마차에 폭탄을 투척하여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이봉창 의사. 효창공원 내의 이봉창의사 동상은 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와 이봉창의사동상건립위원회가 동아일보사의 후원을 받아 건립되었으며, 1995년 11월 6일 이봉창 의사 63주기 추모식과 함께 제막식이 열렸습니다. 2002년 국가보훈처(현 국가보훈부)는 이봉창의사 동상을 현충시설로 지정하였습니다.

이봉창 의사가 수류탄을 던지는 모습을 형상화한 동상 주변에는 건립 배경을 설명하는 건립문과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애국단원이 되어 적국 일본의 수괴를 도륙하기로 맹세하는 이봉창 의사의 선서문을 새긴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백범 김구 묘역

1949년 6월 26일, 안두희의 흉탄에 쓰러지신 백범 김구 선생. 선생의 장례식은 열흘간 국민장으로 치러졌으며, 동지들과 혼을 같이 하겠다던 평소 유언에 따라 7월 5일 효창원 서북쪽 언덕에 안장되셨습니다. 이후 1999년 4월 12일 부인 최준례 여사도 함께 합장되셨습니다.


삼의사 묘역(안중근 의사 가묘)

1946년 7월 6일, 조국 광복을 위해 싸우다 순국하신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세 의사의 유해가 송환되어 국민장을 치룬 후 옛 문효세자 묘터에 안장되었습니다. 그 옆에는 안중근 의사의 가묘가 세워져 유해가 안장될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묘 석축에는 김구 주석이 쓴 '의사들의 훌륭한 공적은 후세에 영원히 전해지리라‘라는 뜻의 유방백세(遺芳百世) 휘호가 새겨져 있습니다.


임정 요인 묘역

1948년 9월 22일, 임시정부주석 이동녕 선생과 비서장 차리석 선생의 유해를 중국에서 봉환하여 옛 의빈 성씨 묘역에 사회장으로 안장하고, 그 해 국내에서 서거한 임시정부 군무부장 조성환 선생도 두 분과 같은 장소에 안장되었습니다.


의열사

효창공원 내에 묘역이 있는 독립운동가 7인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1988년 효창공원 정비공사 때 건립을 추진하여 1990년 준공되었고, 1991년 이동녕, 차리석, 김구, 조성환,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등 7인의 영정과 위폐를 이곳에 모셨습니다.(현재는 안중근 의사의 영정도 모셔져 있습니다.)

2011년부터 임시정부 수립일(4월 11일)이나 환국일(11월 23일) 즈음에 ’효창원 7위 선열 의열사 제전‘을 거행하고 있으며, 2016년 5월부터 후손들이 애국애족의 정신을 기를 수 있도록 평일 개방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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