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일지’를 읽고 - 백범이 그대에게 던지는 질문

남목고등학교  전은빈

 민족의 생명은 늘 젊다. 민족의 자서전은 늘 새롭다. 보다 큰 사상과 보다 큰 실천, 읽을 때 마다 여전히 새롭다. 이 문구는 백범일지를 소개하는 문구이다. 읽을 때마다 여전히 새롭다는 말을 오랫동안 곱씹으며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저자 조세희 씨가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스테디셀러가 계속해서 읽히는 이유는 그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여전히 그 시대에도 통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자신은 자신의 책이 계속해서 읽히는 것이 기쁘지만은 않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난쏘공이 토로하는 부조리들이 여전히 이 사회에 남아있다는 맥락에서 꺼낸 말이다. 사실 백범일지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떤 이유에서든 한 번쯤은 읽게 되는 책에 가깝다. 나 또한 과거에 백범일지를 이런저런 이유로 몇 차례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처음에 백범일지를 다시 펼쳤을 때, ‘과연 내가 이 책을 읽는 것이 시간 낭비는 아닌가.’ 하는 의문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그러나 백범일지를 다 읽고 이 글을 쓰는 이 시점에서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두렵고 어려운 열아홉 살의 초입에서 읽게 된 백범일지는 과거에 읽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생각들을 내게 건네주었다. 아마도 백범 김구 선생님께서 백범일지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질문들이 여전히 현시점의 우리 사회와 나에게 큰 의미를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백범일지를 덮고 난 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이 너무 많아 과연 무엇부터 얘기를 풀어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 그리고 백범일지가 지니고 있는 힘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백범의 글은 소탈하고 진솔하며 역경의 시대를 살아낸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담아내고 있다. 자신의 행적을 포장하고 과시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저 담담하게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자신의 고뇌를 풀어내었기에 우리는 백범일지를 통해 단순한 경외라는 일차적 감정이 아닌 진정 가슴이 울리는 느낌을 전달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갈망하여 더 나은 삶을 꿈꾼다. 그리고 남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고자 하며 그것을 자랑하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있다. 우리 사회는 이러한 감정들이 모여 굴러간다. 이 사회 속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러한 욕망을 내려놓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백범은 자신을 낮추고 이 글을 써내려갔다. 백범일지를 읽으면서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 또 광복을 맞이하여 국가를 재건하는 과정까지 우리 민족은 정말 격동의 백여 년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시기의 굵직한 사건들 대부분의 현장에 김구 선생님께서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 한 개인의 역사가 한 나라의 근대사를 이렇게 오롯이 담아내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와 같이 어떠한 상황이나 외압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믿는 길을 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뚜렷한 주관이 필요함을 느꼈다.
 백범 선생님의 진정한 ‘내공’이 느껴지는 것은 선생님께서 이야기하신 것들이나, 꿈꿔 오셨던 것이 기반하고 있는 사상의 학문적 깊이와 방향이 현재의 상황에 비추어보았을 때도 상당히 논리적 타당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허황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여실히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가능했던 기반을 살펴보면 선생님께서 젊은 시절 고능선 선생님으로부터 유학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스스로 자신의 신념을 구축해나갔기 때문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의 생각과 신념의 깊이와 뿌리가 제대로 서지 않으면 정책에 대한 결단을 내릴 때 일관성을 찾기 힘들며 쉽게 외부에 의해 흔들리기 쉽다. 아마 현재의 우리 사회의 많은 지도자들이 의미 없고 소모적인 논쟁에 치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리라 본다. 백범 선생님의 정치적 결단력의 바탕에는 도덕성이 있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도덕성을 통해 백범 선생은 자신만의 신념을 민족 독립의 문제와 이후의 식민지 청산의 문제, 분단의 극복 문제에 적용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내 자신이 참으로 부끄러웠다. 그저 학교 공부만 할 뿐이지, 스스로 나의 가치관과 신념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있었던 적이 있기는 했을까.  
 백범 김구 선생님께서는 백범일지를 통해 자신의 삶과 그 곡절 많은 삶을 살아오며 느낀 것들, 생각들을 풀어 놓으셨다. 사실 올해 새로이 백범일지를 읽으며 떠오른 생각은, 김구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그대들은 ‘안녕’하신지 묻고 계신 것 같다는 것이었다. 작년 연말, 우리 사회와 젊은이들에게 던져졌던 안녕에 대한 단순한 물음은 현재 우리 사회의 문제점과 부조리를 외면하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김구 선생님께서는 한 평생을 조국의 안녕을 위해 고민하고 힘쓰셨던 분이었다. 사실 나는 백범 김구 선생님의 정치적 견해나 행보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지도 못하고 그에 대해 왈가왈부할 만한 그릇도 아니기에 이에 대해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김구 선생님이 자신의 일생을 통해 보여주셨고, 던져주셨던 메시지를 통해 나는 과연 내가 얼마나 우리 사회의 안녕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지 떠올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김구 선생님께서도 분명 당시 사회는 안녕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셨을 것이고, 그렇기에 수없이 구한말 부패한 사회, 일제의 탄압 등에 저항하셨을 것이다. 
 내가 우리의 안녕에 대해서 고민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려운 일이 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김구 선생님이 하셨던 것처럼 국가에 헌신적인 일을 할 수도 없고, 그것이 하고 싶다고 해서 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저 우리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귀를 열고, 눈을 열어서 보고 들으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어렵다고, 모르겠다고 도망가는 그 비겁함 때문에 우리는 안녕하지 못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백범 김구 선생님께서는 당신의 편안함을 위해 숨고, 도망가지 않으셨다. 물론 개인의 안녕과 평안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개인의 진정한 안녕과 평안은 스스로 깨어있고 생각하며, 이를 통해 나와 우리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지켜보고, 혹 그게 아니라면 김구 선생님처럼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을 때 생기는 것이 아닐까.
 사실 김구 선생님은 평범한 소시민은 아니신 것 같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다지 ‘위인’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는 사람이다. 그저 후회 없고 떳떳한 소시민이 되고 싶다. 무지하기 때문에 훗날 역사에 있어 비판받는 일에 한 표를 던졌던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공부를 하는 것이고, 그것이 현재 나의 위치에서 김구 선생님께서 던지시는 질문에 가장 충실히 응답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자주 독립뿐 이라는 김구 선생님의 말씀이 온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만 어떻게 한 사람이 자신의 모든 개인적 물욕을 버리고 조국의 독립이라는 것에만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얼마간 시간이 흐른 후에 백범일지를 또 다시 읽어보려 한다. 그 때의 나는 지금 남겨진 의문들에 대한 답을 새롭게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결국, ‘백범김구’는 민족의 자서전이 맞다. 백범 김구 선생이 성장해나간 기록임과 동시에, 우리 민족이 성장해나간 기록이기도 하며, 또 앞으로 커나갈 사람들의 자양분이기 때문이다.  분명 김구 선생님의 비극적이고 갑작스러운 서거는 우리에게 분명 많은 숙제를 안겨주었다. 그리고 아직도 우리는 그 답을 찾고 있는 과정에 있을 것이다. 백범일지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와 과거의 김구 선생님을 이어주는 하나의 ‘창’이다. 백범일지에 남겨진 그 뜻을 잘 헤아려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언젠가 우리에게 남겨진 그 숙제를 풀어내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