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일지를 통해 배운 것

이일여고  이 지 수

  
  대한 적십자사가 다가오는 9월 25일부터 금강산에서 열리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의 1차 후보자 500명을 추첨했다는 기사를 읽고 마음이 씁쓸했다. 추첨되지 못한 약 7만 2000천명의 마음이 얼마나 서러울지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또 의지와 상관없이 수십 년을 떨어져 살아야만 했던 가족을 만나는데 있어 ‘추첨’되어야만 하는 현실에 분단국가의 암울함을 새삼 깨달았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시고 분단을 막기 위해 애쓰셨던 백범 김구 선생의 자서전, ‘백범일지’의 여운이 진하게 느껴진 이유였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김구 선생에 대해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사적인 가치보다 공적인 가치를 추구하셨다는 점이다. 항일운동에 대한 탄압과 억제가 심하던 시절, 세상에 대한 눈과 귀를 닫은 채 개인적인 부와 편안한 삶을 누리는 것 대신 변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앞장서는 용기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궁금했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졌다기보다는 스스로 나라를 위해 자신의 역할을 찾아 실천해나가는데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되돌아보니, 내가 생활하고 있는 학교라는 작은 사회 속에서도 주번도 아닌데 매일 아침 교실을 쓰는 친구,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나서서 에어컨 필터를 청소하는 친구, 항상 마지막에 남아 문단속을 하는 친구처럼 사소한 것 같지만 우리 반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 친구들을 평소에 지켜보며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같은 반이라는 집단속에서, 더 나아간다면 우리 사회에서 어떤 부분에서든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변화는 ‘나’를 주체로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주체로 모두를 위해라는 생각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느꼈다.
  김구는 신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그가 모든 부분에 있어 완벽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혼자 뛰어나거나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함께 어려움을 헤쳐 나가려는 모습에서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이봉창과 윤봉길, 김구 이렇게 세 사람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나는 뜻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 큰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믿음이 단단해졌다. 그 밖에도 백범 일지을 읽으며 우리에게 익숙하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몸을 바쳐 희생하신 많은 분들을 꼭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의 영웅으로 기억되는 이순신 장군의 뒤에는 나라를 위해 싸운 수많은 병사들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또, 김구가 임시정부의 재정상황이 곤란할 때 해외 동포들에게 원조를 요청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도움을 요청할 줄 알아야 도움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리랑’을 통해 빚 때문에 하와이로 팔려간 방영근이라는 인물의 생활을 접해보해서일까. 낯선 이국땅에서 눈치를 보며 노예처럼 생활을 이어나가면서도 성금을 보내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오르며 감동이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김구의 모습은 자신과 다른 사상을 무조건적으로 배척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개화에 대한 신구의 충돌,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 임시정부의 해체여부를 놓고 벌어지는 갈등과 같이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는 상황에 처할 때마다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하고, 침착히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모습은 앞으로 내가 살아가면서 꼭 본받아야할 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반 친구들의 의견이 모두 같아도 한 사람의 다른 의견 때문에 고민해야하는 것이 실장’이라는 담임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라 맡은 역할이 큰 사람일수록 모든 사람의 의견을 편견 없이 받아들일 줄 알아야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여러 가지 나무가 어울려서 위대한 삼림의 아름다움을 이루고 백 가지 꽃이 섞여 피어서 봄들의 풍성한 경치를 이루는 것이다.’ 서로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큰 숲을 그리는 스케치가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현재의 우리 사회에서는 경쟁이 끊임없이 요구되고 있다. 그러면서 이해관계의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현상이 자연스럽게 생기게 되었고, 동시에 누군가에 의해 얻게 된 불이익을 똑같이 되돌려주려는 현상 역시 이제는 전혀 낯설지 않게 되었다. 드라마에서도 ‘복수’가 이미 흔한 소재가 된지 오래이니 얼마나 우리 생활에서 그런 정서가 보편화되었는지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김구 선생에게 크게 놀랐다. 일제의 식민지배로 35년간 고통 받은 그 당시의 사람들은 물론, 오늘날까지도 일본에 대해 우리가 겪은 것을 갚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일본에 의해 투옥과 고문 등 죽을 고비를 여러 번 겪은 그가 가지고 있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이 부분을 읽는 순간,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뭔가가 울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 역시 각박해져가는 사회에 동화되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돌아보며 반성도 했고, 앞으로는 김구 선생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생활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초등학교 시절, 새 학기에 부모님이 학교에 가져가라며 치자 꽃 화분을 챙겨주셨던 일이 있었다. 그 때 내가 치자 꽃의 향기를 처음 맡아보았던 것 같다. 어릴 적 일이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은은하게 느껴지는 그 향기에 ‘향기가 백 세대를 흘러 전해진다.’라는 말이 어느 정도 실감난다. 백범 일지 역시 나에게, 또 우리에게 그런 의미가 아닐까싶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떠올리면 잔잔한 여운이 느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