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천길 낭떠러지에서 잡은 손을 놓을 용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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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양서윤(이화여고) | 개최일 | 2025-07-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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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길 낭떠러지에서 잡은 손을 놓을 용기
이화여자고등학교 1학년 진반 양서윤 가지 잡고 나무 오르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지만 천 길 낭떠러지에서 잡은 손을 놓는 것이 가히 대장부다. 김구 선생님께서 거사를 앞둔 윤봉길 의사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인용하신 송나라 시의 한 구절입니다. 끝이 보이지 않을 듯한 까마득한 낭떠러지에서 의지하고 있던 나뭇가지를 놓을 수 있는 이가 있을까요?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한 평생을 바치셨던 김구 선생님께선 매번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들며 손을 놓고 또 놓으셨습니다. 백범일지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갓 중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선배가 깜박 잊고 책상 서랍에 두고 간 백범일지를 발견한 후 ‘나도 이 책을 읽으면 나라 사랑의 마음을 배울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망설임 없이 책장을 넘겼지만 책의 내용은 너무나 어렵고 재미없게만 느껴졌고, 결국 ‘무엇 때문에 독립을 위하여 이리 힘쓰셨을까?’하는 궁금증을 품은 채 책 읽기를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고1이 되었을 때, 김구 선생님께서 ‘이젠 그 물음의 답을 네가 찾아보겠니?’ 라는 말씀과 함께 제게 다시 찾아오셨고 저는 그분의 삶 속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아들들에게 보내는 편지와 함께 포문을 연 백범일지는 선생님의 어린 시절로 저를 맞이했습니다. 아버지께 혼이 나 시무룩해하다가, 재종조께서 오셔서 도리어 아버지를 혼내시자 상쾌해 하던 아이. 해맑고 장난스러운 모습에 ‘세상이 이 행복을 지켜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하는 안타까움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고, 선생님의 아버지께서 반신불수가 되어 큰 집에 의탁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꿋꿋이 공부를 계속하셨지만, 과거의 부정부패에 실망하고 글공부가 아닌 다른 세상을 탐구하기로 결심합니다. 이후 선생님께선 마의 상서에 대한 공부를 하거나 동학을 접하며 방황과 깨달음을 반복하던 중 일본 육군 중위인 쓰치다 대위를 살해한 일로 감옥에 가게 되셨습니다. 저였다면 몇 칸 되지 않는 자그마한 감옥방과 모욕적인 일본인들의 태도에 그만 의지를 잃었을 것 같은데, 감옥에서도 누군가를 가르치셨습니다. 다시 독립 운동을 하기 위해 탈옥한 이후 본향에서는 독립운동을 계속하시며 우리 민족의 마음 속에 있는 애국심의 촛대에 불을 붙이는 횃불이 되셨습니다. ”양반도 깨어라, 상놈도 깨어라! 삼천리 강토와 2천만 동포에게 충성을 다하라!” 이 외침이 제 마음까지 울리는 것을 느끼며 어느 곳에 있든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시는 선생님은 참으로 억새와 같은 분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람이 불 때 억새는 흔들리는 듯 보이지만 그 뿌리는 매우 굵고 단단하여 뽑기조차 힘듭니다. 저는 선생께서 삶의 모진 바람에 시련을 겪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하셨지만 결국 꺾이지 않는 신념이란 뿌리를 갖고 이겨내신 분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억새와 같이 든든한 뿌리를 가지고 어느 곳에서나 열심을 다하시며 이번에는 다른 독립 운동가분들과 ‘신민회’를 조직해 활동하셨습니다. 목숨도 아끼지 않고 당당히 대한의 독립을 위해 싸우시던 선생님은 신민회의 안명근 선생과 함께했다는 죄목으로 다시 수감되셨습니다. 하지만 끔찍한 고문에도, 달콤한 말로 하는 회유에도 일본이 원하는 대답을 하시지 않자 재판에서 이원형이란 학생을 회유하여 거짓 죄를 자백하게 했습니다. 일본의 심문에 잔뜩 겁이 먹어 대답하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며 원망보단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가 저 학생이었다면 “선생님께선 죄가 없으십니다!”’라고 당당히 외칠 수 있었을까. 부끄럽게도 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어떤 각오로 지켜내신 대한인데, 저는 눈을 감고 도망치고 싶단 생각만 했습니다. ‘어쩌면 선생님께서 오늘날을 사는 내게 말을 거신 이유는 이러한 나의 연약함을 깨닫게 하고 싶으심이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가 그 학생이 된 것처럼 죄스러운 마음으로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니 선생님께선 고된 옥살이를 끝내시고, 우리 민족의 뭉우리돌대가 되어 세상으로 발을 내딛고 계셨습니다. 그저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힘 쓴 것 밖에 없는데, 일본인들에 의해 억울하게 죄를 선고받고 또 풀려나게 되는 것이 분했습니다. 하지만 출옥 이후 들려온 선생님의 딸의 부고 소식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7살, 귀여움만 받고 자라도 충분할 시기인데 그 어린 아이는 일본으로 인해 나라를 빼앗기고, 평범한 가정에서 자랄 수 없었습니다. 비록 자녀를 가슴에 묻은 그 슬픔을 다 헤아릴 순 없겠지만 자신의 죽음을 옥중에 계신 아버지께 알리지 말라고 한 딸의 유언을 들으며 선생님의 마음은 찢어졌을 것입니다. 가슴 아픈 상황에도 슬픔에 빠져 있기보단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는 김구 선생님을 보며, 자신의 후대에는 이런 아픔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지 않을지 어렴풋이 짐작해보게 되었습니다. 가족과의 짧은 만남 이후 선생님께서는 다시 독립의 길로 나아가 중국 상해에 있는 임시정부로 발걸음을 돌리셨습니다. 임시정부에서 경무국장으로 활동하며 일본의 앞잡이들로 인해 살해당할 위기를 넘기시고, 믿었던 이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하지만 민족의 독립만을 바라는 단단한 뿌리는 꺾이지 않았습니다. 시련도 많은 나날이 지나고 그곳에서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를 만나게 되셨습니다. 이봉창 의사가 일본 천황 살해에 대한 결심을 굳히고 “제 나이가 서른 한 살 입니다. 앞으로 서른 한 해를 산다고 해도 지금까지 보다 더 나은 재미는 없을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영원한 쾌락을 위해 독립 사업에 몸을 바칠 목적으로 상해에 왔습니다” 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마음이 저릿저릿 아려왔습니다. 어리석게도 저의 작은 목숨 하나가 너무도 소중해서 서른 한 살의 나이에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칠 용기가 도무지 나지 않을 것 같은데 ‘죽음’에 대하여 짐작하고 계시면서도 앞으로 나아가시는 모습이 추운 겨울에 피는 아름다운 동백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일제의 지배와 탄압 속에 피어나 당당히 꽃을 피운 의사님의 굳센 의지가 제 마음속의 두려움이란 눈 또한 뚫고 자라나는 것 같았습니다. 후에 독립을 돕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담대하게 나아와서 결국 의거를 이루어낸 윤봉길 의사를 보며 저는 한 번 더 제 자신이 얼마나 나약하고 어리석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분들에게 목숨을 내놓는 것도 아깝지 않던 우리나라를 나는 너무 아끼지 못했구나’ 누구보다 밝은 빛을 가진 두 분의 청년 의사 앞에서 나는 한없이 깨어지고 또 깨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김구 선생님의 자서전뿐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독립을 위하여 힘쓰신 분들을 기억하고 기록하기 위한 글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두 청년의 의거 이후, 한국 군관 양성소를 설립하거나 한국 국민당을 조직하는 등 노력을 이어오시던 선생님은 한국 광복군을 창설하여 일본과 맞서 싸울 준비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무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대한민국은 일본으로부터 광복을 맞이합니다. 함께 대한의 독립을 꿈꿔왔기에 갑자기 지어진 이 여정의 마침표에 기쁜 마음보다 허망한 마음이 앞섰습니다. 전쟁으로 인한 피를 흘리지 않고 독립을 이루어내긴 했지만 외세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기에 완전한 자주 독립이 아니었습니다. 김구 선생님께서는 못내 아쉬운 마음을 내비치셨습니다. 가족들의 죽음에도 마음을 다잡고 버텨오셨는데, 모든 것을 헌신한 길에 끝이 이러한 독립이라니. 간절한 소원이 이리 허망하게 마무리 지어진다는 생각에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고 고국으로 돌아오신 선생님께선 나라를 위한 행보를 이어가시다가 육군 소위 안두휘의 저격을 받고 운명하십니다. 낭떠러지의 가지를 몇 번이고 놓을 수 있을만큼, 설령 어둡고 힘든 길일지라도 우리나라를 위한 일이라면 목숨도 아끼지 않으셨던 김구 선생님. 평생을 대한의 독립을 위해 바치셨고 이제는 우리 마음에 나라 사랑의 씨를 뿌리고 계신 선생님께선 이 책에서 자신의 소원과 함께 마지막 인사를 건냅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하고 하나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하는 셋째 번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 높여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오”대답할 것이다 백범일지를 처음 읽었던 열 네살의 저는 선생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무엇이 당신을 독립을 향해 나아가게 합니까?” 그러나 이 책을 덮은 열일곱의 저는 지금의 우리에게 묻고 싶습니다. “우리나라는 진정한 독립으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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