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대회

수상작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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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의 소원은 무엇인가
작성자 김찬희(함평해보중) 개최일 2023-10-16

그대의 소원은 무엇인가 


함평해보중학교

3학년 1반 김찬희


내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나 김구의 소원은 이것 하나밖에는 없다.”


누군가 자신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것이라며 독립운동가 김구가 생전에 남긴 말이다. 김구, 호는 백범으로 황해도 해주에서 출생했다. 김구는 12세ㅁ 때 양반이 되기 위하여 과거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과거시험 뒤에 숨겨진 뇌물과 같은 타락을 보고 그는 양반으로서의 명성을 얻는 것보다 마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 후 정초 동학에 입도하여 이름을 창수로 바꾸고, 입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기 접주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과거의 숨겨진 면을 보고 절망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깨달음을 얻고 새로운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 나는 정말 존경스러웠다.

하지만 이후 1895, 일본의 미우라 고로와 미야모토 다케타로 등에 의해 명성황후 민씨가 참혹하게 살해당한 사건, 을미사변이 일어나게 된다. 을미사변이 일어난 후 김구는 치하포에서 수상한 자를 발견하는데, 그자의 두루마기 밑으로 칼집이 보이자 김구는 저자가 황후를 죽인 자가 아닐지라도 칼을 숨겨서 가지고 다니는 자라면 우리나라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자라는 건 분명하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 수상한 자는 칼이 있었고 김구는 맨손이었던 점에서 김구는 잠시 망설이는데, 그때 머릿속을 스쳐가듯 생각난 고능선 선생의 말, “벼랑에 매달려 손을 놓을 수 있어야 장부라 할 수 있다.”라는 말을 떠올리곤 그자를 살해했다. 이 때문에 김구는 해주옥에 투옥되고 사형을 선고받지만, 고종은 김구가 국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그자를 살해했다는 점을 고려하여 형 집행을 정지하였다. 사형선고가 내려졌다는 부분을 읽었을 때 사형 집행이 안 될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히 마음 한구석이 어두워진 느낌이었다. 김구는 해주옥에서 함께 지내던 사람들과 함께 탈옥을 결심하고 19893, 탈옥에 성공하지만, 그 대신 김구의 부모님이 투옥된다. 뒤이어 김구는 삼남으로 도피해 법명을 원종으로 하여 중 생활을 시작했다. 탈옥을 결심한 것도 큰 결심이지만 함께 지냈던 사람들까지 구제한 김구의 선택이 정말 인상 깊었다. 나였으면 그 상황 속에서 남들을 챙길 수 있었을까, 나도 저렇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무언가 큰일을 하는 사람은, 긍지부터 다르다는 걸 느끼게 되는 대목이었다.

이후 김구는 승려에서 다시 속인이 되어 고향인 해주로 돌아와 김두래로 변명하여 김주경을 찾아갔다. 김주경을 찾아가자 김주경의 친구 유완무와 그의 동지들을 만나게 되고, 부모님을 연산으로 모시기 위하여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곳에서 고능선 선생과의 갈등을 겪게 되고, 부친상까지 마주하게 되었다. 김구와 그의 아버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의 손을 꽉 잡고 놓지 않았다고 한다. 아들을 향한 깊은 사랑의 마음과 다시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할 먼 곳으로 길을 떠나는 아버지를 향한 김구의 마음이 책에서부터 흘러나와 나에게로 닿는 느낌이었다.

 김구는 교사로 활동하다가 해서교육총회의 학무총감으로 황해도를 순회하며 계몽운동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비극은 빠른 속도로 연속해 찾아왔다. 김구가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당한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한 달 만에 불기소처분으로 풀려났다. 김구는 풀려난 후 양기탁 등의 사람들과 함께 도독부를 설치했고, 만주 이민과 무관학교 창설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일본군이 알게 되자 일본은 김구를 비롯한 여러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해 서울로 압송하여 끔찍하게 고문하였다. 김구는 그곳에서 치하포 사건 때 재판장에서 봤던 일본 경찰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때 그 일본 경찰은 김구의 당당함과 정의로움이 담긴 말들을 듣고 겁을 먹어 김구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도망갔었는데, 김구는 그 경찰이 자신을 기억하고 있는지 시험해보기 위해 그 경찰이 그날에 대해 말을 꺼내기 전까지 그에 관한 말을 일절 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구는 그 경찰이 자신에 대해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보곤 안명근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고 또한 지방 경찰의 대응이 너무 부족하여 교육에 방해가 되니 앞으로는 지방 경찰을 주의시켜 교육에 도움을 주고 또 학교 개학 시기도 이미 지났으니 개학이나 하게 해주시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일본 경찰은 멋쩍은 듯 김구를 고문도 하지 않고 유치장으로 돌려보냈다. 아무리 예전에 만났을 때 자신을 두려워했더라도 자신에게 어떤 해를 가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당당히 자신의 뜻을 말했다는 게 존경스러웠다. 재판에서 김구는 15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 감옥으로 이송되지만 일왕이 죽어 7년으로 감형, 일왕 처의 죽음으로 다시 5년으로 감형되었다. 

이어 김구는 자신의 이름의 구()를 구()로 바꿨다. 이는 왜의 호적에서 벗어나자는 뜻이었으며, 호를 백범(白凡)으로 고쳤다. 그 이후 김구는 상해로 망명하여 상해 임시정부 경무국장의 자리에 올랐고 김구를 따라 아내와 아들, 어머니까지 상해로 오게 되었다. 또한 김구는 임시정부의 내무총장과 한국노병회의 초대 이사장이 되었고 내무총장의 자격으로 국민대표회의 해산령을 내린 후 어머니와 차남을 데리고 다시 대한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후 국무령에 선출되고 임시정부의 내무장, 또 재무장 자리를 맡게 된다. 중요한 직책을 맡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김구는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자리에 오른 것만으로도 대단하지만, 그 속에서 받는 정신적, 외부적 압박들과 부담감을 이겨내고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또 임무를 수행했다는 게 놀랍고 존경스럽기만 했다.

김구는 일본 요인 암살을 목적으로 한 한인애국단을 창설하였다. ‘한인애국단’, 명칭만 들어도 대한을 향한 강한 애국심이 느껴진다. 한인애국단은 일왕 생일 경축식장에서 폭탄을 던져 시라카와 등을 즉사시켰다. 김구는 일본의 추격을 피해 미국인 피치의 집으로 피신했고, 상해 폭탄 사건의 주모자가 자신임을 밝혔다. 하지만 김구가 몸을 숨겼던 곳이 미국인의 집인지라 일본인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였고 그리하여 김구는 상해에서 탈출해 임시정부를 항주로 옮겼다. 사건의 주모자가 본인임을 두려워하지 않고 밝혔다는 점에서 김구의 결백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김구는 임시정부에서 사임하고 가흥과 해염으로 피신하여 장진구 또는 장진으로 행세하며 거리를 다녔다. 그리고 9년 만에 어머니와 아들을 가흥에서 재회하였다. 9년이라는 길고 긴 세월 동안 가족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목소리도 듣지도 못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나라의 독립을 위해 한 몸 바쳐 노력한 김구를 향한 감사의 마음이 더욱 커져만 갔다. 김구는 임시정부의 옹호를 위해 한국국민당과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 한인애국당 및 미주 5개의 단체를 모두 통합하여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를 결성하였다. 이 많은 당들을 통합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을지 나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고, 앞으로의 일들 또한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이후 김구는 한국독립에 지원을 요청했고, 미군인 도노반 장군을 만나 진입 작전을 합의하였고, 끝내 일본은 항복하였다. 김구, 그가 서안에 있을 당시였다. 그 이후로도 김구는 애국적인 활동들을 이어 나갔다. 임시정부 환영회 참석을 비롯하여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을 반대, 또 남조선국민대표민주의원 총리의 자리에 올랐으며 인재양성을 위하여 건국실천양성소를 새로 창립하였다. 그리고 194711, <백범일지>를 출간하였으며 2년 후 1949626일 경교장에서 안두희의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나게 된다.

백범일지 속 김구의 현명하고 지혜로운 판단들이 앞으로 내가 한 나라의 국민으로 살아갈 때 필요한 많은 용기와 자긍심을 심어주어 나에게 좋은 계기가 되었다. 김구가 매일 간절히 바라고 바랐던 대한민국의 독립이라는 별똥별이 늦지 않게 김구에게 도착해 다행이다. 이번 계기를 통해서 김구라는 사람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되었고 나의 삶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았다. 충분하다고 생각하더라도 실상 어떤 부분은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충분한지 등을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독립운동가들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이 없었다면 결코 우리는 지금의 이 시대를 살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뿐인 목숨, 그것을 나라를 위해 내놓는 것, 가족과의 만남을 나라를 위해 언제가 될지 모르는 미래로 미루는 것 등 오직 대한민국의 독립만을 위해 선택하고 실행에 옮긴 모든 것들이 정말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런 큰 결심을 한 사람이 소수가 아니라는 사실이 나를 더 울컥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존경스럽고 결의가 대단한 사람들이 순수 우리 민족들이라는 것이 정말 기뻤고 감명 깊었다. 백범일지를 읽고 난 후 나의 애국심도 전보다 더 강해졌으며, 김구를 비롯한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겪었던 사건들과 비극, 그리고 대한민국 독립의 과정들을 보다 더 생생하게 알게 되었다. 이 모든 것들을 새롭게, 더 자세히 알게 되니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원래도 자랑스러웠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감히 내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더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백범일지는 우리나라의 국민들이 한 번씩은 꼭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다. 세상에는 유익하다는 책들이 정말 많지만, 우리나라의 국민이라면 그 책들을 읽기 전에 이 백범일지를 먼저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까지 감정이 이입되고 책 속의 사건들이 생생히 느껴진 것은 처음인데, 이를 통해 우리나라의 역사는 정말 위대하고 강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또한 김구의 인격과 정신을 닮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김구가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고능선 선생의 말을 떠올렸던 것처럼 나도 김구를 떠올리며 희망을 찾고 상황에 맞는 옳은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우리는 절대 우리나라의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의 과거에 눈과 귀를 기울이지 않고, 우리나라의 과거를 잊고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나라를 모른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우리는 우리가 어떠한 일들을 거쳐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 끊임없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나라를 처음부터 끝까지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자신의 나라를 알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있어야 하고, 실제로 행하는 이들이 있다. 그게 우리 대한민국의 국민들이면 좋겠다. 나 또한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우리 모두가 사랑하고 책임져야 할 소중한 나라이며, 무엇보다 우리는 강한 애국심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우리나라를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나라를 지키는 것이다. 독립운동가들이 우리나라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 또한 바로 이것이다. 나는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내가 사랑하는 나의 나라, 대한민국을 새겨 놓았다. 나는 앞으로도 나의 나라 대한민국을 뜨거운 사랑으로 지켜나갈 것이며 또한 독립운동가들도 잊지 않고 마음속에서 그들을 항상 조명하며 그들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김구의 한평생 소원이 대한민국의 독립이었으니, 나 또한 그의 행적을 따라가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영원히 사랑받기를 간절히 소원하겠다. 누군가 나에게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의 소원은 정의로운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영원히 사랑받는 것이다.”고 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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