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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백범지기] 조국의 독립을 위해 힘찬 노력을 이어갔던 '백범 김구와 가족'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1-05-10 조회 98
첨부파일 04(1).jpg


 


조국의 독립을 위해 힘찬 노력을 이어갔던 백범 김구와 가족

 

 

시간이 빠르게 흘러 추운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이하였고, 어느덧 5월이 되었습니다. 점점 더 화창해지는 날씨를 통해 여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는데요, 오늘은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함께 노력했던 김구 선생님의 가족에 대해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김구 선생님의 두 아들, 김인과 김신


 김구(가운데)와 장남 김인(왼쪽), 차남 김신(오른쪽) (출처: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55일은 어린이들이 올바르고 슬기로우며 씩씩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어린이날입니다. 김구 선생님의 두 아들 김인김신은 어떤 사람일까요?

 

1918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첫째 아들 김인은 1920년 어머니 최준례 여사와 함께 아버지가 계신 상하이로 향하였습니다. 이후 김인은 아버지를 도와 독립운동을 이어나갔습니다. 1935년 애국단을 중심으로 한국국민당이 조직될 때 실무진으로 참여하였고, 1936년 한국 독립군 특무대예비훈련소의 감독관을 맡아 군사훈련에 전념하였습니다. 1937년과 1940년에는 각각 일제강점기 한국국민당청년단 기관지 [전고][청년호성]을 발간하며 독립사상과 독립 의지를 널리 알리고 독립운동을 촉진시켰습니다. 이후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7년에 건국포장, 1990년에 애국장이 추서되었습니다.

 

1922년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난 둘째 아들 김신 역시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독립정신을 물려받았고, 1937년 일본 공군의 중국 난징 폭격을 본 후 공군력으로 조국 독립에 이바지할 것을 결심하였습니다.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으로 중국 공군 군관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은 후, 미국 공군의 랜돌프 기지에서 정식 비행 훈련을 받아 마침내 조종사가 되었습니다. 해방 이후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김신은 공군 창설에 기여하였습니다. 이후 6·25 전쟁이 일어나자 지휘관으로서 여러 공군 전투 출격 작전에 참여하여 공로를 세웠습니다. 특히 1952년 평양 승호리 철교 폭파 작전을 완수하며 북한군을 압도함으로써 강인한 결단력을 지닌 하늘을 지키는 영웅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 표창)을 수여하였습니다.



 

백범일지(출처: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인 그리고 신 두 아들에게

 

너희들로 하여금 나를 본받으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동서고금의 많은 위인 중 가장 숭배할 만한 사람을 선택하여 배우고 본받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들이 성장하여 아비의 일생 경력을 알 곳이 없기 때문에 이 일지를 쓰는 것이다.

다만 유감스러운 것은 오래된 사실들이라 잊어버린 것이 많다는 점이다.

 

그러나 일부러 지어낸 것은 전혀 없으니 믿어주기 바란다. 




이 글은 김구 선생님이 백범일지에 남긴 글입니다. 이를 통해 김구 선생님은 아버지로서 두 아들에게 민족의 이상과 승리를 위한 올바른 길을 걸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자 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교훈을 깨달아 몸소 실천했던 힘찬 아들김인과 김신은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의 두 영웅으로서 많은 이들에게 다시 그 교훈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김구 선생님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


 김구(가운데)와 곽낙원 여사(가운데), 양옆에 김인(왼쪽)과 김신(오른쪽) (출처: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


  

58일은 어버이의 은혜에 감사하는 어버이날입니다. 김구 선생님의 어머니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어머니이기도 한 곽낙원 여사는 어떤 사람일까요?

 

독립운동가 정정화는 곽낙원 여사에 대해 위인의 어머니는 더욱 위인다웠다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곽낙원 여사는 난산 끝에 얻은 아들 김구를 가난한 살림살이와 신분 차별 속에서 일찍부터 바른 길로 이끌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아들이 독립운동으로 감옥에 갇힐 때마다 면회에 가서 하루 세끼 밥을 챙겨주고, 그를 끊임없이 위로하고 독립에 대한 의지를 잃지 않도록 격려하였습니다. 또한, 1924년 며느리 최준례 여사가 세상을 떠나자 독립운동에 힘쓰는 아들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어린 손자를 데리고 위험을 무릅쓰며 귀국하기도 하였습니다. 곽낙원 여사는 아들뿐만 아니라 두 손자, 그리고 다른 청년들까지 애국지사로 길러냈고, 본인도 나라의 독립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였습니다. 하지만 1939426, 독립된 조국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이후에도 민족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몸소 실천하는 모습을 보였던 힘찬 어머니곽낙원 여사는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김구 선생님의 아내, 최준례 여사


김구와 첫째 아들 인, 부인 최준례 여사의 가족사진 (출처: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 



 521일은 부부관계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자 하는 날인 부부의 날입니다. 김구 선생님의 아내 최준례 여사는 어떤 사람일까요?

 

최준례 여사는 김구 선생님과 함께 교육 활동을 하였고, 김구 선생님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을 때에는 공장에서 고된 노동 생활을 하며 감옥에 갇힌 남편 대신 가정을 꾸려나갔습니다. 1918년 큰아들 인을 낳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김구 선생님을 따라 중국 상하이로 향하였습니다. 상하이에서 단란한 가정생활을 이어나가던 중 1922, 둘째 아들 신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신을 낳은 직후,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크게 다치는 사고를 당한 후 폐렴까지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1924,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내무총장이었던 김구 선생님은 일제의 감시로 인해 아내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이후 상하이 동포들이 힘을 모아 최준례 여사의 고생 많았던 삶을 기리고자 그녀의 묘비를 세워주었습니다. 묘비에는 한글학자 김두봉의 글이 쓰여 있습니다. 최준례 여사의 유해는 우리나라가 독립된 이후 1948년에 국내로 봉환되었습니다. 이후 1999412, 효창원 백범 김구 선생의 묘소에 합장되었습니다. 독립운동으로 힘쓰는 남편을 끝까지 뒷바라지하며 돕고자 하였고, 시어머니와 어린 자식들까지 모두 챙겼던 힘찬 아내최준례 여사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위인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곽낙원 여사의 동상과 박승구(동상제작자), 김신, 임윤연(김신 부인), 김덕은 (출처: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


  


화창하고 기분 좋은 날씨가 펼쳐진 오늘, 강한 독립 의지를 가지며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치열한 싸움을 이어나갔던 김구 선생님과 그의 가족들을 한 번 더 마음에 새기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그들의 숭고한 희생과 열정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5월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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