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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KIM K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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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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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치하포 의거

김구는 의병활동이 좌절된 후 1895년 겨울, 청나라와의 연합작전을 추진할 생각으로 다시 길을 떠났다.
평양(平壤)을 거쳐 안주(安州)에 도착했을 때, 전국 각지에서 을미의병(乙未義兵)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귀향길에 올랐다.

1896년 3월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의 주막에서 김구는 조선인으로 변장한 일본군중위 쓰치다 조스케[土田讓亮]를 발견하였다. 김구는 그가 명성황후를 시해한 미우라[三浦]이거나 공범(共犯)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명성황후를 시해한 원수를 갚고 나라의 수치를 씻는다는 우국의 일념으로 그를 처단하였다.

주막 벽에 ‘국모의 원수를 갚을 목적으로 이 왜놈을 죽였노라'는 포고문을 써 붙이면서 ‘해주 백운방 텃골 김창수'라고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집으로 돌아왔다. 약 3개월 후 체포되어 해주감옥에 수감되었다가 인천감리서로 옮겨졌다.

감옥에 투옥된 김구는 죄수들에게 글을 가르치며 애국정신을 일깨웠고, 자신은 신학문 연구에 몰두하면서 새로운 세계관과 정치의식의 폭을 넓히게 되었다.
이를 통해 시급한 과제는 일본인 몇 명을 죽이는 게 아니라, 백성들을 가르치는 일이며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일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김구가 탈옥한 후 교육계몽운동을 전개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