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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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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김구, 대한민국의 누가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가?
작성자 김보민(양주고) 개최일 2021-11-22 조회 33

김구, 대한민국의 누가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가?


양주고등학교

2학년 3반 김보민

 

평소 학생들에게 누군가는 자주 묻곤 한다. “너의 꿈은 무엇이니?” 지금의 학생들은 선생님이요!’ , ‘소방관이요!’ 와 같은 자신이 후에 이루고 싶은 직업들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김구는 달랐다. 만약 하느님이 김구에게 네 소원이 무엇이냐라고 물을 떄, 그는 망설임 없이 이렇게 답할 것이라고 얘기하였다.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그는 어릴 적부터 남달랐다. 그가 12살이 되던 해, 김구는 집안 어른으로부터 갓을 쓰지 못하게 된 사연을 듣고 양반이 되기 위해 공부하기로 결심하였고, 아버지가 청수리 생원을 선생으로 모셔다 글방을 차려줘 공부를 시작하였다. 이 장면을 본 후 나는 문득 우리 사회가 떠올랐다. 현재 모든 것이 많이 발달하고 성장했다 한들 부조리함은 어딘가 항상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움에도 후환이 두려워 피하고, 특히 자신의 일이 아닌 남의 일이라면 더욱 외면한다. 하지만 12살밖에 되지 않은 김구는 달랐다. 조선 당시의 부조리함에 어린 나이에 맞서 싸우기 위하여 과거 공부를 시작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 어린아이가 세상을 바꾸고 부조리함을 바꾸려 나서는 모습에 나 자신을 반성하며 부조리함이 있다면 누가 먼저 나서길 기다리지 않고 먼저 나서서 싸워나가는 포부를 가져야겠다고 다짐하였다. 12살 당돌한 김구처럼.

하지만 그렇게 일이 호락호락하게 잘 풀린 것은 아니었다. 김구는 과거장 문이 열리는 순간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자리를 먼저 잡으려고 힘 있는 자를 앞세워 떼지어 들어가는 광경, 늙은 선비들이 합격을 애걸하는 모습, 과거 답안지를 한 아름 도적질해 갔다는 이야기, 글 모르는 부자가 몇천 냥씩 주고 글을 사서 진사가 되었다는 이야기 등 그곳은 쓰레기장과 같았다.

그렇게 김구는 오랫동안 준비한 과거를 포기하였고, 그의 아버지 역시 그의 결정을 지지해주었다. 아마 김구는 이렇게 부조리함이 가득한 시험을 통과해서 과연 내가 사회의 부조리함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과연 우리라면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을까? 오랫동안 준비한 시험에 부조리함이 가득하여도 나의 살길을 찾아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시험을 봤을 것이다. 아무리 사회의 부조리함을 없애고 싶은 마음이 큰 김구였어도 찢어지게 가난했던 그의 입장에서 한 번쯤은 고민했을 법한데 확고하게 자신의 뜻을 주장하였다. 우리에게 돈, 명예 등 수 많은 자산이 있다한들 정의롭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다시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과거를 포기했지만 거기서 끝내지 않고 아버지의 권유로 풍수지리학, 관상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하지만 공부를 하고 그의 얼굴을 보니 어느 한 군데도 귀하고 부유하고 좋은 상이 없고 천하고 가난하고 흉한 상밖에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책에서 얼굴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는 해답을 찾고 자신은 좋은 마음을 갖고 살기로 큰 결심을 하게 되었다. 아마 김구는 이 마음을 죽을 때까지 한평생을 갖고 지냈기에 이렇게 조국 독립에 힘썼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러던 중 18, 김구는 동학에 입도하게 되고 입도 몇 달 만에 연비가 수천 명이 되어 아기접주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그렇게 아기 접주가 날아다닌다는 소문까지 나며 동학 농민 운동을 하는 모습이 나와 동갑인 나이에 저렇게 큰일을 해내는 모습들이 책에 생생하게 느껴졌다. 내가 지금 이 순간에 이렇게 공부를 하고,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내 여가생활을 보내는 시간이 전부 김구 선생님을 포함한 그들의 희생 덕분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해지며 그들의 희생을 가슴 깊이 새기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야겠다 다짐하였다.

내가 책을 읽다 놀란 부분이 몇 군데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김구가 임시정부에 찾아가 했던 부탁이었다. 도산 안창호를 찾아가 큰 역할을 달라고 한 것이 아닌 문지기 역할을 달라고 한 것에 나는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인물도 뛰어나고 실력도 출중한 사람이 고작 문지기 역할을 부탁하다니 말이다. 그렇게 김구는 안창호가 만들어준 타이틀인 경무국장 김구로서 일정이 있따면 과감하게 죄를 조사하고 처벌하는 것을 보고 굉장히 멋있고 본받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임시정부가 점점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을 때, 57살의 김구는 두 청년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를 만나게 되었다. 그들의 의거로 대학민국 임시정부는 다시금 타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책을 읽을 때 이 부분이 가장 마음이 아팠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쳐 희생한 그 마음, 말로 헤아릴 수가 없다. 또한 나라를 위해 투쟁하셨지만 역사에 한 글자도 올리지 못한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고 싶다.

그러다 1941, 진주만 공습이 시작되었을 때 김구는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하였다. 이 기회로 의열단을 조직하고, 연합군과 손을 잡고 미국의 지원을 받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하지만 19458, 갑작스레 일본이 항복해 그토록 꿈꾸던 독립이었지만 그는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자신의 소원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완전한 자주독립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김구의 일생 단 하나의 소원은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다. , 대한이 직접 이루지 못한 독립에 기쁨보다 걱정이 앞섰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대한은 누구보다 멋지고 자주적인 국가가 되어있다. 이렇게 완전한 대한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돌아본다면 독립운동가들의 노력으로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백범 김구 선생님은 자신보다는 국가를 먼저 생각하며 앞장서 나갔다. 과연 그 누가 인생을 나라 독립을 위해 한평생 희생하라고 한다면 앞장서 나서겠는가. 김구, 그 자체이니 가능하다. 그가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과 사회의 부조리함을 고쳐 나가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이 자리까지 와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것이다. 이런 김구 선생님을 보며 나는 내 자신을 많이 반성하게 되었다. 항상 부족함 없이 컸음에도 부족하다고 투덜거리며 사회, 또 우리나라를 위한 일은 정작 작은 것이라도 실천한 것이 없으니 말이다. 찢어지게 가난했음에도 나 자신보다 조국을 먼저 생각하는 그를 보며 지금 이 생활에 항상 소중함을 가지고 살아야겠다 다짐하였다. 또한 큰일을 하지 않아도 어린 나이부터 사회의 부조리함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김구 선생님을 가슴 깊이 새기며 지금은 작은 것부터 하나씩 실천해 나가 훗날 훌륭한 사람이 되어 부조리함에 직접 맞서 싸우겠다고 다시 한번 더 다짐하였다.

지금 우리가 편히 먹고, 마시고,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는 것은 그 뒤에 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기 때문이기에, 나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백범 김구 선생님의 소원을 다시금 새기기로 굳게 다짐하였다.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동포 여러분! 나 김구의 소원은 이것 하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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