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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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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김구 선생님께
작성자 복소임(중앙경찰학교) 개최일 2020-12-01 조회 217

김구 선생님께


중앙경찰학교

순경 복소임


선생님, 그 곳에서 안녕하신지요? 나무들이 색색이 단풍 옷을 입어가는 가을의 초입에 선생님께 편지를 씁니다.


선생님 저는 서울의 정동을 거니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언젠가 선생님께서도 그 길을 걸으셨겠지요. 그리고 아마 그 길 위에는 선생님의 굳건했던 의지와 정신이 깃들어 있을 것입니다. 정동에는 선생님께서 중국에서 돌아와 귀국연설을 하셨던 서울주교좌성당도 있고, 바로 옆 덕수궁 함녕전에는 인천감옥에서 사형집행을 기다리던 선생님의 목숨을 살려준 전화기가 있었지요.

 

지난 봄 친구들과 함께 구한말 근현대사의 중심이었던 정동의 여러 장소들을 걸으며, 문득문득 우리 역사의 장면들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3.1운동에 앞장섰던 독립투사들이 거쳐간 이화학당과 배재학당,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이 세워졌던 서울시립미술관,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던 중명전.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고, 몸도 가벼웠습니다만 마음만은 무거운 그런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던 중명전 앞에 섰을 때는 나라 잃은 수치심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애국지사들의 분통함과 목을 놓아 통곡했던 수많은 백성들의 아우성이 들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일제의 항복 소식을 전해 들으셨을 때,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느낌이었다고 하셨지요. 백범일지를 읽으며 선생님이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쌓아온 노고와 분투들을 바라보니 어찌하여 그런 심정이 드셨는지 이제는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그토록 바라셨던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 홀로 일어서는 그 기쁨의 부재가 저도 진심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중명전을 나와 정동길을 걷는데, 봄바람이 곁을 맴돌아도 무거운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 한다’, ‘결코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거나 경제력으로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한 것이다.’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수 십년이 지나도 여전히 남아있는 일제의 상흔들, 끝나지 않는 논쟁을 지켜볼 때면 저도 모르게 분노가 차오르곤 하지만 인의와 자비, 사랑을 강조하셨던 선생님의 말씀을 마음 깊이 새깁니다.


중명전에서 나와 정동길 중간에서 살짝 옆으로 빠져나오면 옛 러시아공사관이 있고, 그 위로 정동사거리를 지나면 경교장이 있지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집무실로 쓰였고, 또 선생님께서 운명을 달리하신 장소인 경교장. 지금은 강북삼성병원 부지 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70년 전 선생님의 생과 사가 교차하였던 그곳은 지금 커다란 병원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희망과 불행, 삶과 죽음이 뒤섞인 곳이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그곳에서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입니다. 경찰관이 되어 마주하게 될 미래의 죽음들이 두렵고, 무겁습니다. 허나 훗날 삶의 현장과 죽음의 현장에 제가 있게 되겠지요. 과연 내가 사람들의 생명을 살려낼 수 있을까, 그들의 불안을 덜어줄 수 있을까, 타성에 젖지 않는 경찰관이 될 수 있을까, 스스로를 온전히 사랑하고 그 사랑을 베풀 줄 아는 경찰관이 될 수 있을까. 나날이 의문만 늘어갑니다.

 

백범일지를 읽는 동안 수없이 많은 질문들을 선생님께 올렸지만 내내 저의 머릿속을 맴돌던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죽음조차 두렵지 않고, 가난에 개의치 않는 맹목적인 희생, 모진 고문에도 꺾이지 않는 선생님의 강한 정신을 어떻게 감히 본받을 수 있을까요. 그 굳건함 앞에서 저는 한낱 미생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아 송구할 따름입니다.


폭우가 쏟아지는 입교날, 중앙경찰학교 정문에 들어서며 젊은 경찰관이여 조국은 그대를 믿노라라는 문구를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았던 기억이 납니다. 설렘과 열정, 떨림과 벅참 같은 것들이 마구 꿈틀거렸던 첫날을 지나 벌써 두 달여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습니다. 허나 솔직한 심정으로는 경찰정신 혹은 사명감이란 단어는 여전히 제게 어렵기만 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 같은 학급의 교육생이 교수님께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사명감이란 무엇인가요?” 그리고 교수님께서는 이런 대답을 해주셨습니다. “나도 사명감이 뭔지는 사실 잘 모르겠어. 그런데 들어봐. 내가 엄청나게 참혹한 현장에 자주 나갔었거든. 역과 교통사고 같은 거. 정말 끔찍해. 시신이 형체가 없어. 그런데 어떻게 해. 누군가는 그걸 옮겨야 하잖아. 그리고 그게 우리 일이야. 나도 무섭고 손이 벌벌 떨려. 그런데 내 일이니까 하게 되더라고. 모르겠어. 모르겠는데 그런게 최소한 사명감 비슷한 거라도 되지 않을까? 내 가 맡은 일을 그냥 그렇게 해 나가는 거?”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오셨다는 그 말씀이 여지껏 들었던 다른 어떤 답변보다 제게 와 닿았습니다. 쉽게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은 가장 어려운 일이지요. 저는 2년 전 안나푸르나의 5416m 봉우리를 넘은 적이 있습니다. 콧물까지 얼어붙는 추위와 고산병, 배낭의 무게를 버티며 2주간 씨름했던 그 때, 너무 지치고 두려웠지만 거북이처럼 한 발짝 한 발짝 정상을 향해 올라갔습니다. 안나푸르나로의 여행이 제게 선물해준 단 한 가지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한걸음씩 꾸준히 전진하다보면 해내지 못할 일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죽지 않았고, 저의 한계는 생각보다 넓었습니다.

 

살아가다보면 제 능력의 한계에 부딪혀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요. , 현실에 굴복하고 싶게 만드는 유혹들이 많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그럴때마다 선생님의 삶이 주신 교훈을 떠올리겠습니다. 제가 맡은 일을 굳건하게 해내겠습니다. 모진 고문에 변절하는 자들이 속출할 때에도 입을 굳게 다무신 것처럼, 많은 인사들이 떠나가는 임시정부를 그 자리에서 묵묵히 지키신 것처럼 말입니다.

 

십수년 후에도 경찰정신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는 제 모습이 그려집니다. 제복을 입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고민이자 숙제이겠지요. 훗날 무엇을 해야 할지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선생님께서 저의 힘과 지혜가 되어주길 소망합니다. 또한, 선생님께서 임시정부의 문지기가 되기를 원하셨듯. 저도 신뢰의 발판이 될 수 있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선생님께서 관상 좋은 사람보다는 마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셨듯, 세상을 올바르게 분별하여 사람구실 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선생님께서 인의와 자비와 사랑을 강조하셨듯, 네요 내요 없이 세상 모든 이들을 동료로 삼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백 가지 꽃이 섞여 피어 봄들의 풍성한 경치를 이룬다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지식과 학문을 자유로이 탐하는 지혜로운 이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선생님께서 눈 덮인 들판을 곧은 걸음으로 묵묵히 걸어오셨듯. 훗날 뒤따르는 사람의 이정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제 이름 석자처럼 항상 소임을 다하는 경찰관 복소임이 되겠습니다. 부디 지켜봐 주십시오.

 

-중앙경찰학교에서 후배 경찰관 복소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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