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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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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백범일지 감상문
작성자 신가은(가산중) 개최일 2019-09-09 조회 245

백범일지 감상문

 

가산중학교

3학년 4반 신가은

 

백범일지를 읽게 된 계기는 학교 독서시간을 통해서인데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독서시간을 쪼개서 사용하다 보니 책을 천천히 읽는 나는 내용을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다른 책을 읽을 때보다 많이 곰씹을 수 있어서 좋았다. 백범일지는 백범 김구 선생님이 일평생 작성하신 자서전을 읽기 편하게 각색해 놓은 책이었다. 김구라는 이름은 역사를 잘 못하는 나도 워낙 유명한 이름인지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름만 안다 뿐이지 정확히 그분이 뭘 하셨는지 어떤 분이셨는지 물어본다면 이 책을 읽기 전까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나는 위인전이나 자서전보단 소설 쪽을 더 좋아하는 편이지만 읽다 보니 점점 빠져들어 김구가 내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김구라는 이름 앞에 붙는 백범이라는 호는 듣기만 했을 때 하얀 호랑이가 연상되어 멋있는 호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냥 평범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애국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점점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기에 어쩌면 평범한 사람이라는 건 김구 선생님에게 어떤 휘황찬란한 호보다 더 어울리는 호일지도 모르겠다. 백범일지 원본은 국가 보물 제 1245호로 지정되었다 한다. 나도 훗날 훌륭한 사람이 돼서 내 일생을 담은 책을 쓰면 국가 보물로까지 지정이 될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정말 어려운 일일 것 같다. 이제 서론은 고사하고 내용을 보겠다.

 

첫 단원은 김구의 집과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사실 난 자서전을 읽을 땐 그 사람의 어린 시절 때 일을 가장 흥미롭게 읽는 편이다. 나와 한참 달라 보이고 마치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 같아도 어렸을 땐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사람은 결국 태어나서 자기하기 나름이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물론 어렸을 때부터 타고나게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도 많기도 하다. 어쨌든 김구는 평범한 집에서 태어나 평범하게 자랐다. 천연두를 앓아 얼굴에 자국이 생기기도 하고 이웃집 동갑내기들과 뛰어놀기도 했다. 아버지가 이부자리 속에 둔 돈을 몽땅 챙겨나와 집을 나서다 아버지에게 매를 맞는 모습은 정말 그 또래 어린아이가 할 만한 철없는 짓이라 다른 면으로 신선했다. 그렇게 자란 김구는 공부를 해서 과거에 급제하고 싶었다. 선생님을 불러 공부를 열심히 한 김구는 실용적인 공부를 하라는 아버지를 설득해서 과거를 보게 되었다. 그렇지만 과거장에서 김구가 본 광경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각종 부정부패가 난무하였던 것이다. 공부를 한다는 것이 소용 없다고 느낀 김구는 서당 공부를 그만두고 풍수나 관상 공부를 하겠다고 했다. 나는 이 때 김구가 용감하다고 느꼈다. 자신이 계속 하던 걸 갑자기 튼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당 공부를 하는 걸 굉장히 좋아했고 과거장에 응시할 정도로 열심히 했는데 말이다. 지금과 시대적 상황이 좀 다르긴 하지만 나라면 공부를 계속 하다가 갑자기 다 소용없단 생각이 들어도 멈추지 못할 것 같다. 잘못된 길이라고 생각이 들면 바로 틀 줄 아는 김구가 멋졌다. 김구는 풍수나 관상 말고도 지리, 전쟁, 군사 등 여러 책들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 즈음 동학에 대한 소문들이 떠돌기 시작했다. 몇몇 개는 터무니없는 소문 같았지만 호기심이 인 김구는 동학에 든 오응선이란 사람을 찾아갔다. 이야기를 나눈 김구는 동학에 입도할 마음이 불같이 일어 동학에 입도하게 되었다. 고작 열여덟 살에 김구는 수천 명의 신도를 밑에 두게 되고 아기 접주라는 별명을 얻었다. 얼마 후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신도가 많은 김구는 선봉장으로 뽑히게 되었다. 그 와중 가장 큰 세력인 이동엽 세력이 있었는데 김구의 세력들과 반목이 깊어졌다. 김구가 홍역을 앓게 되었을 때 이동엽이 전군을 이끌고 부하 장수를 잡아 죽인 일이 있었는데 김구는 그 일 후로 동학군에서 빠져나왔다. 동학당이란 이유로 숨어 지내게 된 김구는 선봉장으로서 군대 훈련을 하다 만난 청계동 안 진사가 떠올랐다. 어려운 것이 있으면 찾아오라던 안 진사의 말에 김구는 안 진사를 찾아갔고 안 진사의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안 진사의 맏아들이 바로 안중근 의사인데 좀 신기했다. 김구도 안중근도 모두 독립운동가로 유명한 사람들이기에 그 둘이 일찍이 이런 인연으로 제일 처음 만났다는 게 신기했던 것 같다. 여기서 김구는 고능선이라는 학자를 만나는데 김구의 좋은 선생님이 되어주었다. 고 선생과 동거동락하며 많은 것을 배운 김구는 고 선생의 이야기라면 모두 듣는 사람이 됐다. 어느 날 집에 참빗장수라고 하는 사람이 찾아오는데 고 선생은 남을 도와 일을 되게 할 자질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김구는 그 사람을 데리고 돈을 마련해 청나라로 갔다. 여기저길 돌아다니며 소문을 들어보니 일본에 저항할 의병을 일으키려는 김이언이라는 사람이 있다 한다. 김구는 김이언을 찾아 의병 일으키는 일에 동조한다. 하지만 뭔가 흐지부지 마무리되고 결혼 문제로 골머리를 썩다 김구는 중국 금주 서씨 집으로 가기로 한다. 치하포 여관에 들르는데 이때 두루마기 밑으로 칼집을 숨긴 왜놈을 보게 된다. 이다음 이어진 전개는 좀 잔인하고 충격적이었다. 바로 칼을 꺼내 왜놈을 난도질하여 죽여 버렸다는 묘사가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독서시간이었기에 이 부분을 읽을 때 숨을 삼켜야 했다. 김구가 사람을 죽인 적이 있다니 정말 몰랐다.

 

사람을 죽였으니 당연히 김구는 감옥으로 잡혀 들어갔다. 감옥에서 신문을 받고 재판을 열긴 했지만 국모의 원수를 갚았다는 소문이 퍼져나가자 김구는 감옥의 왕이 되었다. 감옥의 왕이라니 이것 참 좋은 별명인지 나쁜 별명인지 짐작할 수 없지만 어쨌든 김구는 특별한 죄인 취급을 받았다. 아무도 김구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댈 수 없었고 김구는 정말 감옥의 왕이었다. 김구의 옥중생활 첫 번째는 독서, 두 번째는 교육, 세 번째는 남의 글 대신 써 주기, 네 번째는 노래 부르기였다. 이것만 보면 옥중생활 중 한 일이라 생각하기 어렵다. 김구는 비록 감옥에 있었지만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죄수들과 친분을 쌓던 김구는 탈옥을 결심하게 된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정말 용기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줄사다리로 담을 넘다 비상소집 소리가 들려 007처럼 재빨리 탈출하는 모습이 정말 창작 소설 같았다. 이게 한 사람의 인생이었다니 믿을 수 없을 정도다. 심지어 이 때 김구는 20살 남짓이었기 때문에 아직 많이 남았다는 게 더 놀랍다. 그렇게 감옥을 나왔지만 곳곳을 떠돌며 생활하게 된 김구는 승려 생활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일생을 승려로 보낼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중옷을 입은 채로 고기를 먹는 등 승려 생활을 게을리 하다 집으로 돌아온다. 자신을 찾는 편지를 보낸 유완무의 집에서 며칠을 쉰 다음 고 선생을 만나 뵈었다. 여러 일을 겪은 김구는 이제 고 선생과 생각이 많이 달라진 부분이 있어 고 선생이 실망하기도 했다. 그 사이 아버지가 별세하시고 김구는 오 진사 집 큰사랑에 학교를 세웠다. 그리고 1905, 을사 5조약이 체결된 후 김구는 양산학교의 교사가 되었다. 교육에 종사하고 있던 때 큰 사건 하나가 터진다. 바로 유명한 하얼빈 사건이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총살한 사건이다. 김구는 다시 감옥에 잡혀와 안중근과의 관계에 대해 신문을 받았다. 그렇지만 불기소로 석방되어 김구는 신민회에 참석하게 된다. 이쯤 와서 생각해보니 김구는 역사 속 이름 좀 들어봤다 하는 것에 거의 연관되어 있는 것 같다. 교육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것도 멋지다고 생각했다.

 

다음해 1911, 일본이 우리나라를 장악한 후 애국자로 꼽히던 사람들을 모두 체포해 가던

즈음이었다. 당연히 김구도 신문실로 끌려 들어가 각종 고문을 당했다. 독립운동가 분들이 당했다는 고문은 아무리 듣고 들어도 너무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난다. 나는 사소한 고통이라도 견디기 힘들 때가 많은데 그런 잔인한 고문을 견디실 정도로 나라를 사랑하셨던 걸까? 김구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독립운동가 분들이 지켜낸 우리나라가 최근 헬조선이란 이름 등으로 불리어지며 다른 나라와 비교되어지는 게 떠올라 좀 씁쓸하기도 했다.

 

비록 감방에 갇히게 되었지만 김구는 옆방의 사람들과 서로 말을 전해가며 결심을 더하였다. 왜놈 경찰은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으면 잔혹한 고문을 행하였고 견디다 못한 김구는 자신이 스스로 끝장내는 것을 똑똑히 보라며 기둥에 머리를 들이받기까지 했다. 여러 사람들이 인공호흡을 해 살아나긴 했지만 17년 형을 선고받고 김구는 다시 징역을 살게 되었다. 며칠 후 서대문 감옥으로 동지들과 함께 이감된 김구는 그 곳에서 백범이라는 호를 자신의 이름에 붙이고 열심히 공사장 등에 나가 일을 했다. 얼마나 일을 열심히 했는지 상까지 받고는 가출옥으로 석방되기까지 하였다. 감옥에서 돌아오고 김구는 다시 안신학교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정말 교육에 많은 열정을 부으셨던 분 같았다. 왜놈 경찰한테 잡혀간 이유도 학교의 교장으로서 아이들을 가르쳤다는 이유가 클 텐데 다시 돌아와 교육을 포기하지 않다니 정말 대단한 분 같았다. 이 후에 김구가 중국으로 가서 상해의 임시정부 경무국장이 되는 일은 국어 교과서에도 수록이 되어 있던 부분이다. 이 부분을 읽기 전에 먼저 국어 교과서에서 읽었기 때문에 아는 부분이 나오자 뭔가 신기했다. 1919년 즈음, 백성들이 일어나 만세를 부르기 시작했을 때, 김구에게도 같이 만세를 부르자며 권하는 청년들이 있었다.

 

하지만 김구는 따로 할 일이 있었기에 만세운동을 거절했다. 김구는 재목장사꾼으로 변장해 개찰구에서 여행객을 검사하는 왜놈에게 들키지 않고 길을 떠났다. 먼 길을 지나와 겨우 상해에 도착한 김구는 안창호에게 정부의 문지기를 시켜 달라 청원한다. 하지만 이튿날, 안창호는 김구에게 경무국장 자리를 맡긴다. 젊은 사람들도 많은데 김구에게 문지기를 시키기 미안하기도 하고 김구가 옥중생활을 하고 온 적이 있으니 왜놈들의 실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라고 하니 김구는 부득이 응낙할 수밖에 없었다. 경무국장은 무려 경찰, 검찰, 재판관을 겸하는 자리에 형 집행까지 맡아 하는 직책이었다. 김구는 경무국장이란 자리에 5년 동안 앉아 있었는데 당시 프랑스 조계가 독립운동에 특별히 동정적이었다. 그래서 이런 일이 있었다. 왜놈 경찰 일곱 명이 쳐들어와 김구에게 수갑을 채우려 하자 프랑스 경찰이 가로막아 경무국으로 이동시켰다. 같이 잡혀 들어온 동지들은 좋은 사람이라고 석방시켜주는 걸 원한다고 말하자 프랑스 경찰은 김구의 심문만 가지고 바로 동지들을 석방해 주었다. 그 뒤 김구는 임시정부를 대표해 배심관으로서 심문하곤 했는데 김구가 보증하면 즉시 석방하는 일이 많았다. 그렇게 왜는 김구를 쉽게 건드리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취임하고 박은식으로 대통령이 바뀔 때 임시정부는 무정부 상태에 빠진다. 김구는 국무령의 자리에까지 올라 정부를 지켰다. 그러는 동안 김구는 이봉창, 윤봉길 의사를 만나게 된다.

 

그들의 독립운동을 주동하고 계획하여 이봉창과 윤봉길 의사의 독립운동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니 이것 참 놀랍다. 일제강점기 때 있었던 여러 유명한 독립운동에 김구의 손이 안 닿은 곳이 거의 없는 것 같았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 사건으로 현상금이 걸리게 된 김구는 또다시 떠돌아다니며 피신하는 삶을 살았다. 나중엔 아예 배 위에서 자고 생활하기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임시정부까지 독립 운동가들이 직무를 버리며 위기에 처하자 김구는 새 국무위원을 뽑았다. 김구의 남경생활도 위험해져 갔는데 결국 김구는 또 떠나게 되었다.

이즈음 김구의 어머니 얘기가 나오는데 모든 부모님은 (일부는 아니지만) 훌륭하고 대단하시지만 김구가 대단한 사람이었던 만큼 김구의 어머니도 대단한 분이셨단 생각이 들었다. 옥중생활을 오래 한 김구에게 면회를 가서 타박하지 않고 오히려 덤덤하게 이야기하시거나 감옥에서 나오고 놀아나는 김구에게 따끔한 지적을 하시고 아내를 일찍 잃은 김구의 아들에게 젖을 물려 주신다거나 도통 쉽게 할 수 없는 일들이다. 김구를 이렇게 품어주신 어머니가 있었기에 김구도 이렇게 후대들이 존경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김구의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김구의 독립운동을 응원해 주었고 사기를 북돋아 주었다.

 

성공해서 귀국할 때 내 유골과 먼저 떠난 김구의 아내 유골을 가져가 고향에 묻어달라는 말은

좀 코끝이 찡하기까지 했다. 임시정부는 이청천을 광복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고 광복군 창립식을 거행했다. 김구는 국무회의 주석으로 임명되었고 열심히 독립을 이끌어오던 어느 날, 드디어 왜적이 항복한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김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말을 듣자마자 너무 기쁘다 못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왜적이 항복하긴 했지만 김구는 임시정부 해산이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임시정부가 해야 할 14개 원칙을 정하곤 김구는 드디어 그리던 조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동포들 전부가 모여 환영회가 열렸고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3의사의 유골을 안장하기도 했다. 동포들에게 인사와 강연을 마치니 김구의 자서전은 길고 길었던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조국으로 돌아와 끝나게 되었다.

 

많은 독립운동가분들이 계시지만 다 역사 교과서에서 이름만 얼핏설핏 들어봤을 뿐 이렇게 한 사람의 일생을 통째로 들어 본 건 거의 처음인 것 같았다. 백범일지를 보니 정말 김구는 인생의 7~8할 정도를 독립 운동에 그야말로 쏟아 부으셨다. 그만큼 나라를 사랑하셨고 아름다운 우리나라를 후대에게 물려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제 한 몸 아끼지 않으신 김구 선생님의 사상과 정신을 지금의 우리도 깨우치고 본받아야겠단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훌륭한 분이셨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역시 김구 선생님의 백범이라는 호이다. 김구도 대단하고 엄청난 분이시긴 했지만 빈틈없이 완벽한 분은 아니셨다 생각한다.

 

애초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김구도 잔혹하게 왜놈을 죽이곤 허세를 부리기도 했고 감옥에서 나왔을 때 잠깐이었지만 기생과 놀아나기도 했다. 김구도 본래는 평범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애국심만은 지지 않는 분이셨다. 아무리 평범한 사람이라도 자신만큼 애국심을 가진다면 나라는 바뀔 것이라는 생각에 자신부터 평범한 사람이라는, 얼핏 들으면 멋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호를 붙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자신의 일평생을 조국독립에 바칠 정도면 얼마나 독립이 간절하셨을지 겨우 독립을 이루게 됐을 때 얼마나 기쁘셨을지 어쩌면 나는 평생을 가도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분들이 지켜낸 나라에서 편히 태어나 편히 교육받고 자랐으니 말이다. 하지만 평생 기억해야겠다. 그분들의 마음 다 헤아리지 못해도 그분들 같은 사람 되지 못해도 그분들의 사상과 정신 다 이해하지 못해도 김구 선생님 같은 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내가 대한민국이라는 땅에 발을 디디고 서 있다. 그 정도는 잊지 말아야겠다. 비록 김구 선생님의 발끝에라도 미치지 못할지라도 김구를 닮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김구는 훌륭한 사람이었다. 내 자발적으로 이 책을 읽은 건 아니었지만 이 백범일지를 통해 한 사람의 기구한 일대기를 알 수 있어서 책을 읽는 긴 시간동안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의 독립에 일생을 다 쓰신 김구와 독립운동가 분들, 그리고 지금도 우리나라를 위해 애써주시는 분들, 그리고 이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백범일지 감상문을 마무리하겠다.

 

-2019.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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