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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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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작성자 김민지(양산여고) 개최일 2017-11-30 조회 1548

백범일지독서감상문

 

양산여자고등학교

2학년 7반 김민지

 

백범 김구 선생은 병자년(1876) 711일 자시에 태어났다. 글공부에 흥미가 있어 여러 서당을 다니며 공부하였으나 과거의 폐단을 직접 목격한 뒤 글공부를 그만두고 관상 공부를 하였다. 그러던 중 동학에 입도하게 된다. 접주가 된 김구 선생은 해주성 전투에 참가하게 되고, 또 다른 접주 이동엽에게 아끼던 부하 이용선을 잃는다. 그 후 청계동 안 진사를 찾아가 그곳에서 지내다가 고 선생을 만나 그에게 유학과 의를 배우며 그를 따른다. 중국 금주 서씨의 집으로 가기로 하고 길을 떠난 김구 선생은 여관에서 명성황후를 시해한 미우라의 공범으로 추정되는 일본인을 만난다. 김구 선생은 나라의 치욕을 갚기 위해 그 일본인을 살해하고, 세 달 뒤 해주옥에 들어가게 되고, 두 달 뒤 인천 감옥으로 이감된다. 그 뒤 죄인들과 함께 탈옥을 단행하고 방랑하다가 승려 생활을 시작한다. 그 후 부모님과 재회하지만 김구 선생을 농민으로 만들려는 작은 아버지를 피해 고향을 떠나 강화도로 향한다. 강화도에서 정체를 숨기고 김경득을 찾던 김구 선생은 김경득의 동생 김경진의 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김경득의 소식을 기다린다. 그곳에서 자신을 찾는 유완무라는 사람의 소식을 알게 된 김구 선생은 김경진의 집을 떠나 유완무를 찾아간다. 이때 유완무가 김구라는 이름을 새로 지어준다. 유완무는 김구 선생이 어떤 인물인지 알아보기 위해 이곳저곳 유랑을 시키고 난 뒤 교육을 더 시키기 위해 서울로 보내기로 결정한다. 그 뒤 김구는 아버지의 별세, 약혼녀와의 사별, 안창호 누이와의 약혼 파기, 최준례와의 결혼 등의 일을 겪고 애국 계몽 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안명근 사건 이후 김구 선생은 세 번째로 감옥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심문을 받던 김구 선생은 17년 전 인천 경무청에서 만난 일본인 순사 와타나베를 다시 만난다. 여러 차례 심문과 고문을 받은 김구 선생은 15년 형을 받고 서대문 감옥으로 이감된다. 감옥에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김구 선생은 메이지의 사망으로 8년을 감형 받고 인천 감옥으로 다시 이감된다. 그 후 가출옥으로 방면된 김구 선생은 농사 감독을 하기 위해 동산평으로가 소학교를 세우고 마을을 정비해 나간다. 김구 선생은 중국으로의 망명을 결정하고, 임시정부의 경무국장, 내무총장에 취임한다. 그동안 아내 최준례가 폐렴으로 세상을 뜬다.

 

임시정부의 경무국장을 맡은 김구 선생은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그 중 이동휘라는 사람이 김구 선생에게 공산혁명을 회유한다. 그러나 김구 선생은 우리의 독립적인 공산혁명이 가능하냐고 물으며 그렇지 않다는 대답에 자존성을 상실한 의존성 운동은 임시정부 헌장에 위배되는 것이라며 단호히 거절한다. 그 뒤 민족주의자로 구성된 한국독립당이 구성되어 민족운동자와 공산운동자가 조직을 따로 가지게 된다. 한편 임시정부는 무정부 상태에 빠지게 되고, 주위의 권유로 김구 선생이 국무령으로 취임해 조각에 착수한다. 김구 선생이 재무부장과 민단장을 겸임하던 때,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임시정부는 큰 성과를 거두게 된다. 한편 5당 통일 회의가 개최되어 조선민족혁명당이 탄생하고 임시정부 취소운동이 일어난다. 김구는 급히 사람들을 모아 국무회의를 진행하고 임시정부 옹호를 위한 한국국민당을 조직한다. 이러던 중 조선민족혁명당이 분화되어 임시정부를 지지하게 되어 정부는 차츰 탄탄한 길로 나아가게 된다. 한편 김구 선생은 남목청 사건으로 목숨을 잃을 뻔 했지만 가까스로 살아남아 치료를 받는다. 이후 김구 선생은 광복국을 창설한다. 한편, 대가족을 거느리고 남경으로 떠난 김구 일행은 조선민족혁명당과 한국국민당, 조선혁명당, 한국독립당으로 나뉘어 남경을 떠난다.

 

임시정부는 중경에 머물게 된다. 김구 선생은 각 단체가 합동 통일해야 함을 주장하고 통일 공작을 개시한다. 김구 선생이 창설한 광복군은 미군과 협동하여 몇 년간 참전을 준비 하였으나 일본의 항복 소식을 듣고 통탄을 금치 못한다. 김구 선생은 귀국하는 길에 상해에 들러 윤봉길 의사의 거사 장소, 아내의 묘 등을 찾아간 뒤 우리나라로 발길을 돌린다. 귀국한 김구 선생은 1946년 지방 순회를 시작한다. 두 번이나 수감되었던 인천 감옥을 찾아가 옛 생각에 잠긴다. 그 뒤로 공주 마곡사, 예산 시량리 윤봉길 의사 본댁을 방문하고 다시 서울로 귀환하였다. 그리고 즉시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3열사의 유골을 환국케 하고 장례를 치른다. 그 뒤 삼남 지방과 38선 이남 서부 일대을 순회한다. 삼남 지방을 순회하며 과거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 제자를 만난다. 그리고 38선 이남 서부 일대를 순회하며 38선 때문에 가보지 못하는 고향을 바라보며 슬퍼하고 돌아오는 길에 선조 정순왕릉에 참배한 뒤 서울로 귀환한다.

 

김구 선생은 우리 독립운동에 큰 기여를 한 분이시다. 어려서부터 글공부에 흥미가 있어 서당을 다니며 글을 배우고, 동학의 접주가 되기도 한다. 일본인 살인사건과 안악사건으로 감옥에 수감되기도 하고, 출옥 뒤에는 농감이 되어 농촌 계몽을 하다 상하이로 망명한 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경무국장, 내무총장, 국무령 등을 역임한다. 이로부터 항일 무력운동을 시작하고 이봉창 의사, 윤봉길 의사 등의 의거를 지휘한다. 일본의 항복 소식을 들은 뒤 귀국하여 통일 정부 수립을 역설 하였다. 1949년 육군 포병 소위 안두희에게 암살당하고 효창공원에 안장되었다.

 

그동안 독립운동하면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 폭탄, 이봉창 의사의 의거 등만 생각해왔는데, 뒤에서 그것을 지휘해 오신 김구 선생에 대해 알아볼 수 있어 뜻깊은 책이었다. 영화 암살에서 독립운동을 지휘하는 김구 선생의 모습이 나온다. 큰 비중이 있는 역할은 아니었지만 호탕하고 무게감 있는 모습은 김구 선생을 묘사하기에 적절했다. 백범일지를 읽고 나니 재미도 있고 존경도 하게 되는 김구 선생의 일생에 대한 영화가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우리나라의 독립을 이끈 김구 선생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가 나와 백범일지를 읽지 않은 사람들도 김구 선생에게 더 가까워지고 그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김구 선생은 인류에게 필요한 것이 무력, 경제력, 자연과학도 아닌 인의, 자비, 사랑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경제 발전 등에만 치중하고 다른 사람에 대한 자비, 사랑에는 무신경하다. 최근 자연과 문명의 대립이나 농촌 공동체를 다룬 책, 영화들을 봐와서 더욱 그 말에 공감했다. 특히 나의 소원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과학만 가지고도 편하게 살기에 넉넉하다.’ 라는 구절을 읽으며 과학이 발전되지 않은 나라에 사는 상상을 해보았다. 일상생활에서 조금은 불편한 점이 있겠지만 개발도상국이 행복지수가 선진국보다 월등히 높은 것처럼 우리 국민들은 서로 돕고 함께 살아가며 더욱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과학이 발전해 가는데 우리나라만 그것에서 도태되는 것은 우리나라에게 큰 손해이고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우리 국민을 지킬 정도의 무력, 굶어 죽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경제력만을 가지고 국민들이 서로 도우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시대가 올까? 사람은 하나를 가지면 열 개를 더 갖고 싶어 하는 욕심이 있기 때문에 욕심 없이 현재의 기술에 만족하기란 힘들겠지만 언젠가 그런 날이 와서 김구 선생의 바람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과학 기술만 발전하고 우리 주위의 이웃에게는 관심이 없는 사회가 아닌 기술의 발달은 조금 떨어지더라도 다 함께 행복한 사회에서 살고 싶다.

 

지금까지 독립운동을 하시는 분들은 모두 굉장히 대단하고 특별한 사람들이라고 생각 했다. 그러나 백범일지를 읽은 뒤에는 그 분들이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런 거사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보통 사람의 몇 배에 버금가는 용기와 신념이 필요하겠지만 본질적으로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다. 그동안 존경했지만 멀게만 느껴졌던 독립운동가 분들을 조금은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윤봉길, 이봉창 등 영웅 뒤에 숨겨진 김구라는 조력자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어서 좋았다. 뒤에서 그것을 지휘하는 것도 상당한 용기와 노력이 뒤따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앞으로는 김구 선생에 대해 이전과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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