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낮은 사람이 되고자 한 가장 높은 사람

야탑고등학교 김승연

 
 그 어느 누구보다도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셨던, 70 평생을 오로지 조국의 독립과 겨레의 자유를 위해 싸우다 안타까운 죽음을 맞으신 백범 김구 선생님.
 나는 이분을 국어교과서에 실린 글로 처음 만나 뵙게 되었다. 선생님께서는 독립이 없는 나라의 백성으로 평생을 설움과 부끄러움과 애탐을 받아서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 완전하게 자주독립한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보다가 죽는 일이라 하셨다. 우리나라가 독립국만 되면 가장 미천한 자가 되어도 좋다는 그 분의 눈물겨운 진심으로 인해 김구 선생님의 글은 오래 기억에 남는 글이 되었다.
 내가 국어책 속의 글로만 존재하시던 백범 선생님을 인간 백범으로 다시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올라와 백범일지를 읽게 되면서 부터이다. 동그란 안경을 끼시고 사람 좋은 웃음을 얼굴 가득 웃고 계신 김구 선생님의 사진 속의 첫 인상은 동네 할아버지 같으셨다.
 백범일지는 김구 선생님께서 직접 쓰신 자서전이다. 백범일지를 쓰실 당시 선생님은 상해에서 임시정부의 주석이셨다고 한다. 언제 죽음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떨어져 있던 두 아들에게 자신이 지낸 일을 알리자는 동기에서 쓰시기 시작한 이 글을 본인은 유서라 말씀하셨다.
 김구 선생님의 삶을 가장 잘 나타내 보여주는 것이 나는 그의 이름이라 생각한다. 백범 김구선생님을 다들 백범 김구라고 한꺼번에 부르지만, 백범은 ‘가장 낮은 사람’ 이라는 뜻의 호이고, 김구는 본명이었던 김창수를 고친 이름이다. 같은 음의 이름을 두 번이나 바꾸었는데, 한 번은 일본인 쓰치다 조스케를 죽인 후 감옥에 구치되다 풀려난 뒤 바꾼 구(龜: 거북이)와 일제의 호적에서 떠난다는 뜻으로 또 한 번 구(九: 아홉)로 바꾸었다. 이름에서 느껴지듯 김구 선생님은 용기 있고 대범한 큰 인물이기도 하시지만 겸손하면서 솔직한 분이셨다.
 또한 김구 선생님은 공부를 아주 많이 한 사람이기도 하다. 어렸을 땐 종이가 까매질 정도로 글 연습을 했고, 서당에서 제일 공부를 잘 하자 이를 시샘한 한 학생 때문에 선생님께서 공부를 못하는 척이라도 하라고 말씀하셨을 만큼, 공부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게다가 김구선생님은 동학, 불교, 기독교 모두 섭렵한 희한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렇게 공부를 많이 해서 그런지 선생님은 사람을 딱 보고 이야기만 해도 그 사람의 열정과 속내, 정신 상태를 다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어찌 보면 선생님은 타고난 비범함을 성숙한 인격으로 다듬어서 낮아짐을 실천하신 분이 아닌가싶다. 그래서 이분께 친근감이 느껴지는가 보다.
 김구선생님의 문어체는 왠지 친할아버지께서 해 주시는 옛 이야기들을 떠올리게 한다. 책이라고 해서 점잖은 고풍스러운 말투로 쓰지 않으셨다. 일제를 왜놈이라고 하고, 사람들에게 느끼는 감정도 순화하지 않고 기분대로 그대로 풀어쓰셨고, 읽는 동안 재미도 있고 한국사를 공부하는 기분까지 들었다. 이런 분이시기에 감옥에서 고문을 받으시고 고통을 당하실 때 내 마음이 더욱더 괴로웠다. 윤리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셨던 서대문 형무소의 손발톱 뽑는 고문기구등 별별 무서운 고문기구 이야기가 떠올라 소름이 끼쳤다.
 게다가 선생님의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아이들까지 가족이 겪으신 모진 고생 또한 가슴을 아프게 했다. 특히 감옥살이 하는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남의 집에서 일을 하셔서 밥을 넣어주시고 옥에 갇힌 아들에게 이제 나 하나의 아들이 아니라 이 나라의 아들이라 말씀해주신 선생님의 어머니는 그 아드님만큼이나 훌륭하신 분이다. 그분은 이후에도 아들의 독립운동의 든든한 뿌리가 되어주셨다. 역시 훌륭한 부모님에게서 훌륭한 자식이 길러지는 것 인가 보다. 김구 선생님과 뜻을 같이 했던 ‘한인 애국단’ 청년 의사들의 어머니들도 같이 생각나 마음이 숙연해졌다.
 김구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나라를 위한 피 끓는 마음을 가진 분들의 간절함이 모아져서 내가 사는 지금의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한 편으로는 감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끄러워졌다. 그 시대에 나라의 독립을 위해 꽃다운 청춘과 목숨을 희생하신 분들께 평화를 빚진 느낌이 들어 죄송스럽다. 힘쓰고 애씀 없이 물려받은 이 평화를 당연한 것으로 누리고 있으니 말이다.
 풍요의 시대에 태어나 별다른 결핍을 경험해 보지 못한 우리들에게 애국심이란 올림픽이나 선수권대회 같은 국제경기에서 대한민국 국기가 중앙에 높이 올라가고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 나도 모르게 가슴이 찌르르 해지며 뜨뜻해지는 감정이나 다른 나라가 우리나라에 위협을 가했을 때 치솟는 울분쯤으로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공동체 전부의 유익보다 개인의 편익이 앞서 생각되는 풍토에 익숙해져서 나라와 민족은 멀게만 느껴지는 익숙지 않은 단어가 되었다.
 김구 선생님처럼 개인적인 욕심 없이 조국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살다 가신 분들이 보시면 통탄하실 세상이 된 것이다.
 선생님께서 일찍이 걱정하셨던 대로 우리민족은 서로 전쟁을 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갈라져 서로 총을 겨누고 있다. 그러나 선생님은 모든 사상도 가고 신앙도 변하지만 혈통적인 민족만은 영원히 성쇠흥망의 공동운명의 인연에 얽힌 한 몸이라 하셨다. 또한 소위 좌우익이라는 당파도 결국 영원한 혈통의 바다에 일어나는 일시적인 풍파에 불과한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북한 김정은의 전쟁위협이 날마다 고조되는 요즈음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공동운명체로서 나라와 민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조국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살다가 그것 때문에 죽기까지 하신 백범 김구 선생님의 뜻을 받들기 위해서는 다시 하나 됨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흘러가는 역사 속에서 볼 때 지금 우리의 시대 역시 선생님 말씀처럼 지나가는 일시적인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외침과 국난을 겪으면서도 버텨 지금에 이른 우리 민족의 저력을 믿고 현재의 난국을 헤쳐 나가기 위해 모두의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그리하여 결국은 백범 김구 선생님이 그토록 소원하시던 문화국가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의 힘을 모아보자. 백범선생님은 하늘에서도 응원하며 힘을 보태주실 것이다.
 가장 낮은 사람이 되고자 했던 가장 높은 사람, 잊지 못할 민족의 스승 한분을 그분이 유서처럼 쓰신 글에서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