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 나에게 있어 당신은 영원한 교육자입니다

춘천여자고등학교 채가은

책을 읽고 난 직후의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글을 쓰는 것은, 내가 백범일지를 읽고 나서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내가 생각하고 느낀 대로 옮겨 적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지금에 와서는 후련하고 벅찬 마음으로 감상을 쓰지만, 이 책을 손에 잡고 읽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방대한 양과 멀게만 느껴지는 그의 삶이 ‘과연 내가 이 책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나는 단순히 선생님께 묻는 방법보다는 직접 읽기를 택했다. 내가 가졌던 의문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아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먼저, 김 구 선생은 난산 끝에 태어나 ‘창암’ 이라는 아명으로 살아오셨다. 어렵게 얻은 아들이자, 스스로도 어렵게 태어났기 때문인지 서로에 대한 효심과 사랑이 무척 컸다. 그는 병상의 아버지를 위하여 허벅지 살을 베어 구워 드리고, 피를 드릴만큼 효성이 지극했다. 부모님 또한 ‘내 집이 흥하건 망하건 네가 알아서 하거라.’ 등의 말로 아낌없는 신뢰를 보여주시고, 세 번의 옥바라지를 하시는 등의 방식으로 사랑을 보여주셨다. 김구 선생님이 민족의 지도자이자 교육자로 높은 평가를 받으며, 큰 감명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모두 이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던 대목이었다.

김 구 선생의 삶에 영향을 끼친 것은 부모님뿐 만이 아니었다. 김 구 선생께 영향을 주고, 또 받은 사람이 책에 수 십 명 나오지만, 나는 그 중 고능선 선생을 먼저 꼽고 싶다. 김 구 선생을 위해 유학과 의를 가르치셨던 그 분의 열정에 감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김 구 선생께 들려주신 금언이나, 손수 접어 두었다가 보여주시는 책장마다 열성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감탄을 자아냈던 첫째 이유는 김 구 선생께 들려주신 문구 하나가 내게도 큰 영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가지 잡고 나무를 오르는 것이 그다지 대단할 것은 없다. 벼랑에 매달려 잡은 손을 놓을 수 있어야 장부라 할 수 있다.’ 라는 문구인데, 명석한 판단보다 실행의 원동력인 과단성이 중요함을 말하고 있다. 둘 중 하나, 어찌 보면 쉽게 나올 수 있는 답인데도 불구하고, 우물쭈물 망설이는 내 모습이 겹쳐져서 더 마음에 와 닿았던 문구이다. 극단적이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것에 맞서 이겨내는 모습이 내 모습이기를, 말보다는 실천하기를 바라고 또 다짐해 본다.

이후로 김구 선생은 청국으로 시찰을 떠나고, 의병활동을 하는 등 나라를 위해 아낌없이 한 몸을 바치는 애국지사의 행보를 이어갔다.

특히 한 방에 있던 일본인을 알아차리고 살해한 후 ‘나는 그 날 거기서 국모의 원수를 갚으려고 왜구 한 명을 때려죽인 사실이 있소.’ 라고 한 옥중의 고백은 담담하지만, 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그의 말처럼 그것은 범행이 아니라 어머니의 원수를 갚으려는 자식 된 도리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사형 직전까지 갔던 김구 선생은 그 유명한 ‘황제의 전화’ 로 인해 사형을 면하게 되었고, 탈옥 후 방랑과 승려 생활을 하다가 을사조약을 맞게 된다. 김구 선생은 을사조약에 반기를 들고 일어선 유생들을 ‘군사지식은 없고 단지 하늘을 찌르는 의분심만 가지고 일어나 도처에서 실패하는 것’ 이라고 평가했다. 늘 교과서적인 평가를 보다가 김구 선생의 객관적이고도 대비되는 평가를 보는 재미 또한 책을 읽는 중간 중간 느낄 수 있던 것들 중 하나였다.

김구 선생은 이러한 ‘의분심만 가진’ 봉기보다는 애국사상을 고취하는 실효적인 방법을 생각하셨다. ‘국가가 곧 자기 집인 줄을 깨닫고 왜놈이 곧 자기 생명과 재산을 빼앗아 자기 자손을 노예로 대할 것임’을 일깨우는 교육이었다. 학교에서 정해진 교과목을 배우고, 의미 없이 칠판을 쳐다보는 학생과 지식을 심어주려는 교사 사이의 무의미한 시간 채움이 아니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더 나은 미래와 내 나라를 위하는 마음으로 열과 성의를 다해 내어주고 받아들이는 소통, 울분과 희망이 어우러져 밀도 높은 교실을 울리는 소리가 있는 학교를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러한 상상은 내 수업태도 마저도 변화 시킬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을 안겨주었다. 남은 1년여 간의 수업이 어항 속 붕어처럼, 둥지 속 새끼 새처럼 입만 뻐끔거리며 받아먹는 수업이 아니기를 소망하고 다짐했다. 처음 꿈을 가졌던 그 때의 마음가짐으로 공부하기로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 후 김구 선생은 내가 알고 있듯이 세 번째 투옥을 당하고 중국으로 망명을 가며, 임시정부를 수립하는데 일조한다. 임시 정부 수립에 큰 공을 세우고도 그가 바란 것은 정부의 문지기였다. ‘허영에 탐닉하여 실무에 소홀할 우려’가 있다는 겸손한 이유를 내세운 그에게 나는 놀란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곧 ‘작은 자리라도 그 중요성과 어려움을 몸소 체험했던 그이기에…….’라는 말로 나를 설득할 수 있었다. 그런 겸손한 마음과 자세가 경무국장, 내무총장을 거쳐 국무령에 이를 수 있었던 열쇠이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김구 선생이 저러한 자리들을 거치고 또 윤봉길, 이봉창 등 의사들의 의거와 여러 혼란한 상황을 맞으며 독립할 때까지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라고 고백한다. 나처럼 개인적인 욕심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누군가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돈이나 명예, 아름다움’ 같은 사사로운 것들, 물질적인 것들을 늘어놓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꿋꿋이 자신의 소원은 대한 독립이고, 우리나라의 독립이며,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라고 한다. 나의 풍요를 위해 전제되어야 할 것들은 잊고 있으면서 무작정 욕심만을 챙겼던 내가 부끄러워지는 하루였음을 인정한다. 앞뒤가 뒤바뀐 것을 비로소 알아차리게 되었음을 수긍한다.

이렇게 민족을 사랑하고, 나라를 위했던 그는 스스로를 백정 범부, 평범한 남자라고 칭하신다. 평범한 남자가 이만큼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듯, 우리도 그만큼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길 바랐던 그의 바람과는 달리 나는 없는 기억 속에서 스스로 자꾸 작아짐을 느꼈다.

어린 두 아들을 위해 남겨놓으신 일기와 유서인 이 글을 읽고, 나는 되짚어 본 기억 속에 아무것도 없는 것에 대해 허탈함과 약간의 슬픈 감정이 있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인물이 되기를 바라면서, 역사가 되기 위한 기록은 남겨 놓지 않는 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할머니께서 말씀하신 지나간 ‘나의 역사’ 와 ‘나의 기록’은 이제 어디서 찾아야 할 것인지 막막해졌다. 한 권의 책으로 만들 수 있을 만큼의 삶을 살기 위해 여태껏 노력해 왔는지 다시 하나의 물음을 남기게 되었다.

하지만 책을 읽기 전 내 물음에 대한 답은 찾을 수 있었다. ‘과연 내가 이 책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라고 묻기에는 쉬이 답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을 배웠다. 김구 선생은 애국지사이기보다 수많은 깨달음을 준 교육자였다. 김구 선생은 알고 계실까? 그토록 원하던 교육을 하고 계시며, 나는 아직도 배우고 있음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