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일지. 그가 겪고, 그가 쓰고, 그를 바로 보다.]

원주여고 조은정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소원이었던 이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 다른 누군가는 비웃을 지도 모르지만, 누군가는 진심으로 바란 솔직하고 아름다운 소원이다. 그 소원의 주인이 누구인지 추측할 수 있겠는가? 그는 바로, 일생을 조국을 위해 바친 백범 김구 선생님이다.

독립운동가로 삶을 산 백범 김구 선생님. 그분의 이야기는 다양한 곳에 스며들어 우리에게 다가온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보고 듣고 느끼며, 적지 않게 그분을 접해왔다. 어렴풋이 순간 보았을 뿐인데도, 드라마틱하게 느껴지는 그 분의 삶은 마치 다른 세계의 이야기 같았다. 게다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분을 어딘가 위엄이 넘치고, 무섭고, 어려운 분으로 여겼었다. 그분의 자서전 '백범일지'역시도 '도덕경', '논어'처럼 깊은 안개 너머의 어려운 책처럼 느껴졌다. 언젠간 읽을 책으로 여기고 있는 정도였다. 그러던 책을 직접 보았을 때, 그 소박한 표지의 매력에 반할 수밖에 없었다. 표지를 장식한 백범 김구 선생님의 환하게 웃는 얼굴이 벌써부터 편견을 녹여주고 있었다. 진짜 백범일지의 빛깔을 새삼 깨달으며, 이 책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백범일지의 '일지'는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기록했다는 의미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김구 선생님만의 구수한 글들에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매력적인 이야기를 자아낸다. 한국사에서 그저 딱딱하게 기록된, 단지 암기해야 하는 역사적 사실들이, 여기서는 마치 흥미진진한 소설처럼 부드럽게 흘러간다. 그 생생함은 말로 표할 수가 없다. 몰입해서 읽다가 실존 인물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생각해내면 새삼 새로움에 감탄한다. 그 어떤 책에서 이런 독특한 느낌을 받을 수 있겠는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단지 어려운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정말이지 큰 착각이었다. 백범일지는 단순히 독립운동을 나열해둔 책이 아니다. 백범일지는 일제강점기라는 슬픈 시대를 보냈던 한 사람의 솔직한 이야기를 잘 풀어 녹여낸 책이다. 책 중간 중간 틀리는 날짜 오류나 세부 사실 표기 오류 등은, 이야기 사이사이에 인간적인 빛깔이 숨어들은 것 같아서 가볍게 웃으면서 봤다. 지루하게 느낄 겨를이 없었다. 이제야 백범일지의 참맛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원작을 제목대로 '쉽게' 읽게 하기 위해 정성껏 엮으신 엮은이, 하나씩 솔직하게 과거를 이야기하는 백범 김구. 그 둘의 열정을 충분히 맛보며, 한 장씩, 조금씩 그렇게 읽어나갔다.

백범일지의 시작은 백범 김구의 어린 시절부터, 그야말로 정말 처음부터 시작한다. 아버지가 아끼는 숟가락을 엿이랑 바꿔먹고, 아버지의 돈을 슬쩍 가져가 떡을 사먹으려 하고… 이런 개구쟁이가 후에 나라를 위해 일생을 바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시대는 다르지만,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꼬마 김구의 즐거운 어린 시절은 어딘가 뭉클함을 느끼게 했다. 책장이 넘어가며 시간이 흘렀고, 김구는 어느새 과거도 본 적 있고, 스승도 만나본 젊은 청년이 되어있었다. 21세의 미래가 창창한 젊은 청년이 독립의거로 일본인을 죽이고 감옥에 가고 고문을 받는 장면을 보며, 그 당시의 우리나라를 생생히 보았다. 지금이라면 꿈 많은 대학생이었을 그가, 용기를 갖고 걷는 핏빛의 길은 너무나도 슬프고 혹독하다. 단지 '고문'이라는 두 글자로 듣기만 해서는 생각할 수 없는 고문의 고통은, 핏빛으로 물든 길의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 알려지지 못한 수많은 애국지사들도 그 길을 걸었고, 그들의 발자취 속에 숨겨진 고통은 우리의 예상 이상이다. 다리뼈가 드러내지는 것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무궁화는 심하게 시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한 잎씩 떨어지는 무궁화를 뒤로 하고 백범일지를 읽어 내려간 끝에, 어느새 중반이상에 도달했다. 백범일지에 점점 몰입한 것인지, 때로는 놀라고,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공감하며 열심히 읽어갔다. 한 장 한 장 넘어갈수록, 그의 세월도 차츰차츰 흘러갔다. 점점 심해지는 일본의 압박 속에서도, 여전히 독립을 뜻으로 삼은 그의 모습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그의 진심이 마음에까지 와 닿는 듯하다. 가치관이 조금씩 변하면서 전보다 더 성숙해지는 그 모습은 다른 성장소설 못지않다. 그런 와중에 만난, 백범 김구에게도, 우리나라에도 큰 희망을 준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의 이야기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들의 용기에 작은 박수를 보내고 애도하는 것은 절대 잊지 않았다. 1945년, 그 때의 우리나라를 그들이 봤다면 어떤 마음이었을지… 안타까움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마침내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우리나라의 땅을 봤을 때, 김구가 그들 몫까지의 희망과 설렘을 느꼈기를 소망한다. 오랜만에 보는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벅차올랐기를 소망한다.귀국 후 대한민국 순회가 끝나고, 백범일지가 마무리되는 그 때까지도 그가 소망한 것은 대한민국의 자주 독립이었다…

서거하기 전까지 당신의, 우리의 나라를 걱정하고 생각했던 백범 김구. 그의 책은 여기서 마무리 되었지만, 그의 삶은 아직도 우리에게 이어지고 있다. 그의 손끝에서 시작하여 우리에게까지 이어졌다. 백범일지를 읽어본 지금, 감히 말해본다. 그의 이야기는 어느 소설보다도 따뜻하고, 부드럽고, 열정적이다. 그 따뜻함 뒤에 숨어있는 슬픈 이야기까지도, 조금이나마 알고 공감할 수 있어 영광일 따름이다. 그의 일지를 다 읽고, 표지로 돌아와 당신의 순박한 웃음을 다시 봤을 때의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기회가 와서 흥미로 시작한 책이, 깊은 안개너머에 있다고 느꼈던 책이, 이제는 밝은 빛 속에서 보이는, 매력을 품은 귀중한 이야기의 책이 되었다. 당신의 웃음이 가득한 얼굴을 다시 한 번 바라보며 '백범일지'를 마지막으로 되새겨본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 땅에서 그의 소원은 이루어졌는가? 그의 진정한 소원을 알고 있는가? 백범일지에 쓰지 못한 그 대답은, 백범일지에서 이어질 그 이야기는, 우리의 손에서 탄생할 선율들이다. 그리고 여전히, 그의 흔적은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