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나의 삶의 목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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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김민경(무풍고) | 개최일 | 2024-07-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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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의 목표 무풍고등학교 3학년 1반 김민경 나는 가끔 나 자신에게 질문을 한다. ‘내가 만약 그 시대에 살았더라면 독립운동을 할 수 있을까?’ 나는 ‘할 수 있어’라는 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항상 ‘아니’라는 답만 해왔다. 우리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해서, 우리나라의 평안을 위해서 독립운동은 누군가 해야 할 일이지만 내 목숨이 언제 날아갈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서 어떻게 자처해 독립운동을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생각 속에서 나는 그때 당시 독립운동가분들의 심정을 더 자세히, 더 정확히 알기 위해 백범일지를 읽게 되었다. 먼저 김구 선생님이 상서공부를 하시던 내용 중 나의 마음을 울린 문장을 발견했다. 바로 ‘관상 좋은 사람보다는 마음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라는 문장이었는데 이는 김구 선생님이 상서공부를 하시던 도중 발견한 구절을 보고 생각하신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사람들은 자신을 포함하여 다른 이들을 볼 때 외적인 부분을 중요시하는 마음이 가슴 한켠에 남아 있는 것 같다. 나 또한 그랬기에 이 문장을 보곤 나의 가슴 한켠에 남아 있던 부분을 점차 줄여가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김구 선생님이 시간이 지나 과거를 치르신 이야기와 동학에 들어가 싸움 직전까지 간 이야기를 보았다. 그러다 고종황제가 김구 선생님의 사형을 멈춘 그날의 일을 읽게 되었다. 항상 얘기로만 듣던 일을 이렇게 생생하게 읽으니 그날 김구 선생님의 하루는 얼마나 길었을지, 신문 기사에 실린 자신의 미래를 보고도 떨리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이었을지, 김구 선생님께 여쭈어보고 싶었다. 만약 전화공사가 완료되지 않았더라면.. 그 뒤의 일을 상상하기도 싫을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부터 가장 궁금했던 이야기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난 김구 선생님이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를 만난 얘기를 뽑을 것이다. 이 둘은 김구 선생님의 일생에 있어 가장 큰 변화를 줬던 인물인 것 같다. 책을 읽기 전엔 이봉창과 윤봉길 의사가 어떻게 김구 선생님을 찾아왔는지 궁금했는데 책으로부터 흥미 있게 알 수 있었다. 먼저 이봉창 의사의 얘기를 꺼내자면 그는 일본에서 노동을 하다가 점점 더 악화되는 조선을 구하고자 임시정부를 방문한 것이었다. 그의 언어는 절반이 일어이고 동작이 일인과 흡사하여 특별한 조사가 필요하였고, 며칠 후 이봉창 의사는 직원들과 함께 술을 먹다 술이 반쯤 오르자 직원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당신들 독립운동을 한다면서 일본 천황을 왜 못 죽입니까?” 이에 직원들의 대답을 듣고 난 뒤 그의 대답이 이어지는데 난 이 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엎드려서 생각하기를 내게 지금 폭탄이 있다면 간단하지 않겠는가 싶었습니다.” 당시 서른 살 초반인 젊은 나이에도 그런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다니, 이봉창 의사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당차고, 용기 있고, 독립에 대한 희망이 넘치는 운동가였던 것이었다. 그 뒤 김구 선생님과의 대화에서도 독립에 대한 열정이 더욱 느껴지는 말을 보았다.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31년 동안 육신으로는 인생 쾌락을 대강 맛보았으니 이제는 영원한 쾌락을 도모하렵니다.”라며 독립사업을 하고 싶다며 김구 선생님에게 말을 했다. 이번에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째서인가 가슴이 욱신거리는 기분이었다. 이를 들은 김구 선생님께선 흔쾌히 승낙을 하셨지만, 이를 결심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으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보다 어린 청년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겠다니.. 내가 김구 선생님이었어도 몹시 고민이 되었을 것이다. 비록 이봉창 의사의 거사는 실패로 끝났지만, 이 일로 인해 우리나라의 상황이 중국에까지 닿아 침체되어 있던 임시정부의 새로운 활력이 되었다는 것에서 새로운 의미가 되었다. 두 번째로 윤봉길 의사 그는 홍구의 채소시장에서 장사를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조용히 김구 선생님을 찾아왔다. 그는 “제가 채소를 등에 지고 매일 홍구 방면으로 다니는 것은 큰 뜻을 품고 천신만고 끝에 상해로 왔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습니다.”라며 독립운동의 의지를 밝혔다. 얘기를 들은 김구 선생님은 4월29일 홍구공원에서 천황의 경축전례식을 치루는 이날 일생의 큰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보았고 윤봉길 의사는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했다. 이 또한 김구 선생님께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봉창 의사의 거사가 있고 난 뒤 더 젊은 청년이 와서 부탁하니, 김구 선생님의 속이 말이 아니었을 것 같다. 윤봉길 의사의 거사 당일, 윤봉길 의사는 일곱 시를 알리는 종이 치자 김구 선생님께 자신의 시계를 건네주며 김구 선생님과의 시계와 바꾸자 하였다. 그러곤 “제 시계는 어제 선서식 후에 선생님 말씀에 따라 6원을 주고 산 것인데 선생님 시계는 2원짜리지 않습니까. 제게는 한 시간밖에 소용이 없는 물건입니다.”라고 말했다. 만약 내가 김구 선생님이었다면 이때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눈물이라고 해도 될지 모를 많은 양의 눈물이 흐를 것이다. 그렇게 윤봉길 의사의 거사는 성공적이었지만, 자폭용 폭탄이 터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 역시 우리나라의 큰 활력을 주는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나님이 내게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독립이오.”라고 답할 것이다.’ 어떤 이가 하나님이 묻는 소원에 우리나라의 독립이라 말할 수 있을까. 창피하지만 나는 그렇게 대답하지는 못할 것 같다. ‘나의 삶에 있어서 내가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라고 생각한다면, 대답은 오직 하나다. 김구 선생님이 원하셨던 가장 아름다운 나라를 만드는 것, 그것이 내 삶의 목표 중 하나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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