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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백범지기] 구파 백정기 의사를 아시나요?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4-06-17 조회 4131
첨부파일 image03.png
 

구파 백정기 의사를 아시나요?




2024 백범김구기념관 서포터즈 백범지기 조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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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백범김구기념관 서포터즈 백범지기 조윤진입니다!



사진 출처: 효창독립100주년 메모리얼 프로젝트



여러분은 효창공원에 가본 적 있으신가요? 효창공원은 조국 독립을 위해 힘쓰신 애국선열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입니다. 효창공원에는 삼의사 묘역이 있는데요. 삼의사 묘역에는 이봉창 의사, 윤봉길 의사, 백정기 의사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습니다. 삼의사 묘역 옆에는 안중근의사의 가묘도 나란히 조성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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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창 의사, 윤봉길 의사는 익숙하지만 백정기 의사는 조금 낯설게 느껴지시는 분들이 계실텐데요. 그래서 오늘은 구파 백정기 의사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구파 백정기 의사

사진 출처: 국가보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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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기 의사는 1896년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났습니다. 1914년 인근 농가에서 목화 씨앗을 짓밟고 물레를 파괴한 일제 경찰을 구타한 사건 때문에 피신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농촌의 피폐함과 망국의 설움을 통탄하며 일제에 대해 결사 항쟁할 것을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일제에 대항해 의열투쟁을 전개하는 직접행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였습니다.

그의 구국 일념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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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구국 일념은 첫째, 강도 일제로부터 주권과 독립을 쟁취함이요.

둘째는 전세계 독재자를 타도하여 자유·평화 위에 세계일가의 인류공존을 이룩함이니 왜적 거두의 몰살은 나에게 맡겨 주시오.”

비밀결사 흑색공포단(黑色恐怖團)

1931년 11월 백정기 의사는 일제의 주요 인물을 암살하고 친일파를 처단하며 일제의 주요 기관을 파괴하는 비밀결사 행동대인 흑색공포단을 조직하였습니다. 이들은 '현 사회의 모든 권력을 부정하고 새로운 세계 전 인류가 인생의 모든 방면에서 자유와 평등을 마땅히 누릴 수 있는 새로운 사회의 수립'을 강령으로 했습니다. 흑색공포단은 남화한인청년연맹의 구성원들 외에도 일본, 대만, 중국인도 참여한 단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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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삼정 의거와 백정기 의사의 마지막 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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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원심창, 이강훈 사진출처: 국가보훈부

 

1933년 3월 17일, 백정기 의사는 이강훈, 원심창 등과 함께 중국주재 일본공사 아리요시 아키라를 처단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들은 아리요시가 상하이의 요리점 '육삼정'에서 중국정부 요인을 매수할 목적으로 연회를 주최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중국인들끼리의 내분을 조장하여 반만항일운동의 기세를 약화시키고, 한인 독립운동가 탄압에 중국이 협력하게끔 할 목적이라는 것을 파악했습니다.그들은 육삼정 일대의 지리를 조사하고 아리요시의 사진을 구하여 얼굴을 익히고 아리요시의 승용차 번호까지 외워두었습니다. 연회가 끝나고 아리요시가 나올 때 대형 폭탄을 던지고, 수류탄과 권총은 거사 후 적이 추격해 올 경우 사용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그들은 폭탄과 권총, 수류탄으로 무장하고 육삼정에서 200m 가량 떨어진 송강춘이라는 음식점에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인 밀정의 밀고로 인해 거사를 치르지 못하고 체포당했습니다.

백정기 의사는 나가사키의 우가미 구치소에 수감되었고, 무기징역형을 받게 되었습니다. 1934년 6월 5일, 그는 39세의 나이로 옥중에서 건강 악화로 인해 사망하였습니다. 백정기 의사 사망 후, 그의 유해는 일본에 묻혔습니다. 그는 죽기 전 아래와 같이 유언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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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몇 달을 더 못 살 것 같소. 그러나 동지들은 서러워 마오.

내가 죽어도 사상은 죽지 않을 것이며 열매를 맺는 날이 올 것이오.

형들은 자중자애하여 출옥한 후, 조국의 자주독립과 겨례의 영예를 위해서 지금 가진 그 의지, 그 심경으로 매진하기를 바라오.

평생 죄스럽고 한되는 것은 노모에 대한 불효가 막심하다는 것이 잊혀지지 않을 뿐이고

조국의 자주 독립이 오거든 나의 유골을 동지들의 손으로 가져다가 해방된 조국 땅 어디라도 좋으니 묻어주고, 무궁화 꽃 한 송이를 무덤 위에 놓아주기 바라오.”

비록 육삼정 의거는 거사 직전 발각되어 실패했지만, 당시 항일 의식을 고취시키기엔 충분했습니다. 신문에도 대서특필되어 국내외에 한인독립운동이 지속적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널리 알리는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 민족의 항일운동이 지속적으로 전개되는 원동력을 제공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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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된 조국의 땅으로 돌아가다

육삼정 의거 후, 우리나라는 십여 년 뒤인 1945년 광복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은 일제가 훼손한 효창원(현재의 효창공원)의 터에 독립운동으로 일제에 항거하여 싸우다 타지에서 순국한 독립운동가들의 유해를 봉환하여 독립운동가의 묘역을 조성하려고 했습니다.



 




이듬해인 1946년, 이강훈, 박열 등 아나키스트계 독립운동가들은 김구 선생의 뜻에 따라 이봉창 의사, 윤봉길 의사, 백정기 의사의 유골을 수습하여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여 국민장을 치르고 효창공원에 안장하였습니다.

이렇게 효창공원 일대에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치열하게 목숨을 다 바쳐 싸웠던 선열들의 묘역이 조성되었습니다. 이봉창 의사, 윤봉길 의사, 백정기 의사의 삼의사 묘역과 안중근 의사의 가묘, 그리고 1948년 임시정부 의장 및 주석 이동녕 선생과 국무원 비서장 차리석 선생, 조성환 선생의 임정요인 묘역이 조성되었으며 1949년 김구 선생 서거 후 효창공원에 모셔 안장하였습니다. 효창공원은 백범 김구 선생의 깊은 뜻으로 독립선열의 숭고한 정신이 깃든 공간으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2024년 올해는 백정기 의사가 순국한지 91주년이 되는 해 입니다. 육삼정 의거는 실패했지만 이로 인해 독립운동이 계속해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었고, 항일운동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큽니다. 타국에서 돌아가신 백정기 의사는 그의 유언처럼 독립된 조국의 땅에 묻혔습니다.

독립을 위해 목숨을 다 바쳐 희생했지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있으며, 아직도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독립열사들의 유해도 있습니다. 우리는 나라를 위해 한평생 희생해주신 분들의 뜻을 잊지 말아야 하며 그들의 유해가 조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참고문헌

-박종연. "일제시기 李康勳의 민족운동과 六三亭의거." 숭실사학 0.32 (2014): 115-136.

-박환 ( Park Hwan ). "1930년대 중국의 한인아나키스트와 한인아나키스트단체 - 남화한인청년연맹의 결성과 육삼정 의거 -." 인문학연구 52.- (2023): 57-84.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독립운동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

-효창독립 100주년 메모리얼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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