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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KIM K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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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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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동학·의병 활동

김구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동학사상에 이끌렸다. 18세가 되던 1893년 동학에 입도하고 이름을 창수(昌洙)로 바꾸었다. 열심히 동학 교리를 공부하는 한편, 활발한 포교 활동으로 많은 사람들을 동학으로 이끌면서 ‘애기접주'라는 별명을 얻었다.

1894년 충청북도 보은에서 동학의 2대 교주 최시형(崔時亨)을 만나 팔봉접주(八峰接主)에 임명되었다. 그해 9월 황해도에서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동학군의 선봉장이 되어 해주성을 공격하였으나 일본군과 관군에 의해 실패하였다. 이후 구월산 패엽사(貝葉寺)에서 은둔하며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특히 엄격한 군율(軍律)로 인근 마을에 피해가 없도록 하여 인근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엄정한 군율 시행에 반대하던 동학군의 공격을 받아 많은 부하를 잃고 황해도 진천군 청계동에 있던 안태훈 진사의 도움으로 그의 집에 은거하게 되었다.

청계동에 머물며 유학자 고능선(高能善)을 만나 유학과 의리의 세계관을 배우고, 판단 실행 계속의 단계로 일을 성취해야 한다는 실천철학을 배웠다. 또한 청나라의 사정을 살피고 동지들을 만나보라는 고능선의 권유로 1895년 김형진(金亨鎭)과 함께 청국 시찰을 떠났다.

김구와 김형진은 간도지역의 사정을 살피던 중 김이언(金利彦) 의병부대에 가담하였다. 김이언 의병부대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거사의 동기를 적은 격문을 배포하고, 1895년 11월 압록강을 건너 평안북도 강계성을 공격하였으나, 작전 미숙으로 실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