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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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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민족주의자 백범 김구 선생의 교훈
작성자 김송희(백제고) 개최일 2021-05-24 조회 49

민족주의자 백범 김구 선생의 교훈

 

백제고등학교

2학년 1반 김송희

 

백범 김구 선생은 죽는 날까지 우리 민족을 생각하셨다. 일반 정치인들과는 달랐다. 일반 정치인들은 민족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이익만 추구했다. 민족이 분열되는지 말든지 전혀 관심 없었다. 반면에 백범 김구 선생은 민족을 우선으로 생각하셨고, 사람들을 이끄는 정치적인 활동도 훌륭하게 해내셨다. 백범 김구 선생에 관한 일화가 여럿 전해지고 있는데, 그중 세 가지를 소개하려고 한다.

 

첫째는 백범 김구 선생이 19458월 중국에서 일본의 항복 소식을 하루 전날 듣고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라고 하신 일화이다. 1945815, 우리나라는 몇 십년간의 시련 끝에 드디어 광복을 맞이한다. 하지만 이는 우리 민족 운동가들의 노력의 결실로 이뤄진 결과라고 보기 어려웠다. 일본이 원자폭탄을 맞은 뒤 미국에 항복하면서 일어난 것으로 봐야 했다.

 

이런 점에서 미루어 보았을 때 백범 김구 선생은 민족의 힘이 아닌 미국의 힘에 광복된 후 일어날 결과를 심히 염려하셨을 것이다. 자주적인 힘이 없이 광복했을 때 일어나게 될 결과를 이미 추측해 보시고, 낙담하신 것이다. 백범 김구 선생이 생각하셨던 광복은 이런 게 아니었기 때문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라고까지 표현하면서 슬픔의 감정을 표현하셨던 것이다.

 

둘째는 1893(23)1946(71)에 목포를 두 차례 방문하신 것이다. 백범 김구 선생은 여기저기 떠돌이 생활을 하셨다. 그 이유는 일본 순사들을 피해서 민족 운동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떠돌이 생활을 하시다 머문 지역 중 한 곳이 목포이다. 갈 곳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한 백범 김구 선생에게 민족 운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 곳이 바로 목포이다. 이를 나중에 잊지 않으시고 다시 목포로 찾아와서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셨다.

 

이때는 백범 김구 선생이 민족 지도자로 유명한 때였다. 나는 이 부분에서 백범 김구 선생의 겸손하고, 은혜를 잊지 아니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일반적인 사람은 자신이 어려웠을 때 도와준 사람을 잘 되고 난 이후 모른 체한다. 하지만 백범 김구 선생은 다르셨다. 자신의 명성이 멀리 퍼진 이후에도 겸손한 자세로 은인에게 감사하셨다.

 

셋째는 1948년 평양에서 남북한의 공동 선거를 추진하는 상황에서였다. 김구 선생은 앞에서 말했듯이 민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셨다. 그런 분에게 민족이 분열되는 것은 정말로 끔찍했을 것이다. 만약 평양 남북 연석회의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자신에게도 큰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남과 북이 따로 선거를 실시하고 다른 정부를 설립한다면, 백범 김구 선생은 그것을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김구 선생은 남과 북이 분열되지 않도록 열심히 활동하셨다.

 

우리는 21세기에 살아가고 있다. 이런 이야기가 단지 옛날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현재 분단된 국가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백범 김구 선생의 한민족 의식을 본받으면서 곧 일어날 통일에 대비해야 한다. 우리는 이제 개인주의에서 벗어나서 전체주의, 즉 민족주의의 고귀한 가치를 본받으면서 살아가야 한다. 이것이 백범 김구 선생이 우리에게 전하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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