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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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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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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백범, 그를 다시 떠올린다.
작성자 강혜민(이화여고) 개최일 2020-06-12 조회 105

백범그를 다시 떠올린다.

 

이화여자고등학교

1학년 희반 강혜민

  

관상이 좋은 사람보다 마음 좋은 사람이 되자라고 다짐했던 분다짐했던 그 마음과 인생을 온전히 조국에 바친 분그러나 스스로를 평범한 사람이라고 낮춘 백범 김구(白凡 金九). 그를 떠올려 본다.

 

<백범일지>는 총 두 권으로 상권과 하권으로 구성되어 있다상권은 죽자구나 시대인 1928~1929년 상해에서 집필되었다이 시기는 임시정부의 활동이 침체되어 있던 때로 독립 운동가들의 이탈이 많아 조직이 흔들렸고 백범에게는 현상금이 걸려있었다개인적으로는 아내와 사별하고 두 아들은 어머니와 고국으로 보낸 뒤 동가식서가숙 하던 시기였다하권은 죽어가는 시대라고 하는 1941~1942년 중경에서 집필되었다일본군의 진주만 공습(1941년 12월 7)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고임시정부가 광복군을 내세워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하겠다며 일본에 선전포고를 한 격동의 시기였다목숨을 저당 잡혀 하루하루 살고 있는 그가 유서를 대신해 적은 <백범일지>는 상권에서는 아비가 민족의 한 일원으로 살아온 기록을 어린 두 아들에게 전해주고자 개인적인 성장과 신변활동을 담았고하권은 임시정부를 둘러싼 국제 정세와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로 독립운동에 대한 경륜과 소회를 동포들(특히 미주 동포들)에게 알리려고 적었다백범은 책에서 비록 오래전 일들이라 잊어버린 것은 많으나 지어낸 사실은 없음을 분명히 했다. 50년 동안 분투한 자신의 숱한 과오를 반면교사 삼아 다시는 같은 전철을 밟지 말라는 간곡한 뜻이 <백범일지>에 담겨 있다본인을 본받으라고 적은 것이 아니라 위인을 찾아 귀감을 삼으라고 온 겨레에 당부하는 말씀인 것이다.

백범이 태어난 1876년 병자년은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을 체결한 해였다아이러니하게도 나라가 쇠락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한 해에 황해도 벽촌 상민의 집에서 나라를 구할 인물이 태어난 것이다백범이 어릴 적집안 어른이 사돈을 만나러 한양을 가는 밤길에 갓을 쓰고 나갔다가 동네 양반에게 들켜 수모를 당하고 다시는 갓을 쓰지 못하게 되었는데이 사연을 들은 백범은 분개하여 공부로 입신양명을 하고자 다짐했다그러나 과거시험장에서 매관매직 등 부정행위가 난무한 것을 목격하고는 출세를 접고 평등사상을 외치는 동학에 적극 가담하였다차별과 냉대불평등을 사무치도록 겪었지만 그는 분노하기보다는 교육과 개혁을 선택하였다.

백범은 어릴 적에는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했고 과거시험을 접고는 역학을이후 동학 및 기독교도 받아들였으며 투옥 중일 때는 대학·세계역사·세계지지 등 서양 근대 문물을 접함으로써 학문의 폭을 넓혔다넓은 식견을 가진 그는 세계의 흐름을 읽고 신탁통치 및 남한의 단독선거를 반대하기도 하였다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해 조선의용대를 광복군에 편입시키고 연합군과 공동작전을 실시하면서 군사운동을 준비하였다. 1945년 8월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됨으로써 그동안 준비한 노력이 허사로 돌아갔지만 백범이 바라던 인의예지를 지키는 부강한 나라에 대한 생각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숙제로 아직도 남아있다.

임시정부의 문지기로 들어가 경무국장을 거쳐 내무장재무부장임시정부 주석을 역임했던 백범은 사람을 쉽게 믿지 않고 지켜보다가 일단 동지로 일을 같이 시작하면 깊은 신뢰를 주었고 배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이런 믿음은 여성 광복군 제1호인 신봉빈을 만들었고 이봉창·윤봉길 의사의 거룩한 업적을 이룰 수 있게 하였다백범의 넓은 식견과 남다른 리더쉽은 조국의 광복을 이끄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으리라고 생각된다이러한 그의 성품은 누구에게 왔을까약한 사람들을 괴롭히던 양반을 참지 않고 응징하였으며 자식의 교육을 위해서는 없는 살림에 쌀과 보리를 팔아서라도 스승을 모셨던 아버지에서 왔을까 아니면 본인의 생일상을 차릴 돈으로 권총을 마련하여 왜놈 하나라도 처단하라는 가르침을 주셨던 어머니의 굳은 심지로부터 왔을까인간은 타고난 신분에 의해 귀천이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옳은 가르침과 배움을 깨닫고 행동에 옮겼을 때 비로소 그 귀함이 하늘에 이르는 것일 것이다.

사람의 태생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것처럼 인생도 계획대로 흐르지는 않는다. ‘그날이 오면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을 칠 그날이 왔지만 백범은 희소식이라기보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다라고 회고하였다간절히 염원했던 조국의 자주 광복이 일본의 항복으로 어려워졌기 때문이다그 뒤 남북의 치열한 대립 속에서 결국 조국이 두 개의 나라로 나누어지며 한 번도 원치 않던 역사로 흐르게 되었을 때도 백범은 절망에 머무르지 않고 통일을 위해 쉼 없이 할 일을 찾았다.

 

눈 덮인 벌판을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내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백범은 후대에 좋은 이정표를 남기기 위해 그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던 말인가세계에서 가장 부강하기보다는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바라던 백범개인의 배를 채우기 위해 쓰는 자유가 아닌 제 가족을이웃을국민을 잘 살게하는데 쓰이는 자유와 최고 문화로 인류의 모범이 될 것을 사명으로 삼는 민족이 되라고 당부하였던 내가 이기심으로 남을 해하면 온 세상이 이기심으로 나를 해할 것이니 인의를 지켜 세계인류가 모두 우리 민족의 문화를 사모하도록 하자는 그의 뜻은 현대를 살아가는 나의 마음에도 담아 두어야 할 이정표가 아닌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칸 영화제의 황금 종려상에 이어 아카데미 영화제에서도 4개 부분(작품상감독상국제영화상각본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가장 한국적인 배경과 한국어 대사로 백인들의 잔치라는 아카데미 영화제를 뒤집어 놓은 것이다또한 국제적인 팬덤을 가지고 있는 방탄소년단은 10대들이 느끼는 삶·사랑·사회의 부조리함을 한국어를 통해 음악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전 세계의 각종 상을 석권하고 있다비단 대중문화 분야에서 뿐만이 아니다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국민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힘을 보탰다항일 무장 투쟁을 했던 동학 농민들이 그러했고 2007년 태안에는 유조선으로 유출된 기름을 닦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국민들이 있었다. 2019년 강원도 산불사태’ 때에도 기부가 끊이지 않았다. 2020년에도 마찬가지이다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참담한 사태에서 자가 격리되어있는 이웃을 위해 문고리에 음식을 걸어주고보이지도 않는 바늘귀에 실을 꿰어 한땀 한땀 면마스크를 만들어서 기부해주시는 할머니들이 있다의료진이 부족하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오는 의료진들이 있는 민족인 것이다우리 민족은 이미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와 훌륭한 정신문화를 가지고 있기에 백범의 바람대로 인류의 모범이 될 아름다운 나라를 이룩하기 위해 여전히 노력중이며 하나씩 증명해 나가고 있다이것이 바로 코레아 우라 – 대한민국 만세인 것이다.


생각함에 사악함이 없도록 하라.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삼가라.

 

이미 수십 년 전에 동포들에게 하셨던 그의 간곡한 당부가 요즈음 정세에 적용해도 이상함이 없다.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애국지사들을 보면, ‘어떻게 저런 희생을 하실 수 있을까?’ 하는 경외심과 과연 나는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항상 든다. ‘지금껏 나는 작은 희생이라도 남을 위해 온전히 한 것이 있었는가?’라는 생각과 함께 나의 외모와 신분에만 연연하며 발전하기를 미루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게 된다. ‘아름다운 우리나라를 만들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으며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백범일지>를 접으며 그가 남긴 당부의 말씀들을 다시 한번 깊이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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