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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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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백범일지』를 통해 본 나와 세상
작성자 유화연(임실고) 개최일 2018-11-12 조회 54

백범일지를 통해 본 나와 세상

 

임실고등학교

1학년 1반 유화연

 

지금의 우리나라는 독립운동가들의 피와 땀의 결실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만약 일제강점기 시대에 모두가 일본의 편에 서서 우리 민족, 우리 땅, 우리 하늘을 져버렸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인상 깊은 연설을 꼽으라면 저는 독립운동가의 연설이 인상 깊습니다. 독립운동가의 연설에서 네 소원이 무엇이냐하고 하느님이 내게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할 것이요.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김구 선생님의 나의 소원에서의 연설입니다. 중학교 때 역사 선생님이 나의 소원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주셨습니다. 유명한 분들의 연설은 여러 번 보아 왔지만 항상 연설을 할 때는 저렇게 하는 거구나라고 연설을 파악하면서 듣기만 했었습니다. 하지만 나의 소원을 들으면서 어딘가 먹먹해지는 느낌을 연설을 들으며 처음 느꼈습니다. 바로 이런 연설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연설이라고 그때 처음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누구나 알 것입니다. 더군다나 단상 위에서 그 짧은 시간에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은 아무리 공들여서 쓴 글이라도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나의 소원에서는 그 글 속에 담긴 꾸밈없는 간절함이 느껴졌습니다. 이렇듯 독립운동가들의 정말 많은 노력과 힘든 과정을 거쳐 우리의 땅, 하늘,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아야, 우리가 이를 지켜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김구 선생님의 삶은 독립운동 그 자체였기에 백범일지는 독립운동의 과정과 동시에 김구 선생님의 노력을 담고 있는 자서전입니다. 혹자는 백범일지를 펼치는 것이 딱딱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 읽기 어렵다고 말하고는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딱딱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책장을 넘길 수도 있습니다. 이 글의 끝에는 백범일지를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 나누어진 독립운동 -

독립운동의 역사를 잘 알고 있나요? 저는 기본적인 역사만 알고 있었기에 독립운동은 모두 함께 한 것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하지만 백범일지중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상해로부터 떠나온 가족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남경을 떠나올 때 두 파로 나뉘어 빠져나왔으니, 김원봉 군의 조선민족혁명당과 우리 측으로는 한국국민당, 조선혁명당, 한국독립당 3당이었다.” 이 구절을 읽자마자 정말 충격을 받았습니다. 임시정부가 여러 곳에 새워졌던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파가 나뉘었을 줄은 몰랐습니다. 독립운동을 할 때 모두 한곳에서 힘을 모아서 활동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저에게 두 파로 나뉘어서 3당으로 활동했다는 점을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한국국민당, 조선혁명당, 한국독립당 3당으로 나뉘어서 활동을 한다면 힘이 분산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라는 속담이 있듯이 아주 작은 힘이 모이면 한결 활동하기 편할 것이기에 이렇게 당을 나누었을 때의 장점도 있겠지만 읽으면서 힘의 분산이 우려되었습니다. 이렇게 당이 나누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임진왜란이 떠올랐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선조는 일본으로 통신사 황윤길, 김성일을 파견했습니다. 같은 일본이라는 국가를 보고 돌아왔는데 두 사람의 의견이 달랐습니다. 황윤길은 일본의 침략이 있을 것 같으니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였고 김성일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체구와 외모를 근거로 일본은 감히 조선을 치지 못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선조는 자신에게 듣기 좋은 김성일의 뜻에 따라 준비를 하지 않고 결국 일본의 공격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독립운동을 할 때의 상황과 임진왜란은 두 사건 모두 힘을 모아야 할 상황에 의견이 달라 파가 나뉘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오히려 나라가 힘들 때에는 하나로 힘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임진왜란을 보면 두 파가 힘을 합쳐 황윤길의 말을 듣고 대비했더라면 우리나라의 운명이 바뀌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독립운동을 할 때도 의견 차이를 극복하고 하나로 활동을 했다면 더 적극적인 많은 독립활동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저 또한 조별과제를 처음 중학교에 와서 해보았을 때 혼자서 하거나 몇 명 하고만 하는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그 결과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혼자 하려다가 실패를 했었습니다. 그때는 함께의 힘을 몰랐으나 이제는 작은 소리들이 모여 큰 소리가 되고 그 민중의 소리가 대통령을 끌어내릴 수도 있다는 것을 지켜봤기 때문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결국 힘이 하나로 모아 우리나라를 지키려 했더라면 그 어떤 것도 이루어 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 목숨을 건 독립운동 , 윤봉길의 홍구 공원 의거 -

독립운동 중에서도 윤봉길의 홍구공원 의거는 누구나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백범일지중에서도 홍구공원 의거가 나옵니다. “홍구공원 일본인들이 경축단상에서 대량의 폭탄이 폭발하여 인단장 가와바타는 즉사하고 시라카와 대장과 시게미츠 대사, 우에다 중장, 노무라 중장 등 문무대장이 모두 중상 운운.” 이라는 구절이 바로 홍구 공원 의거입니다. 일본인들은 신문에서 처음에는 중국인의 짓이라고 했다가 다음날에는 각 신문에서 똑같이 윤봉길의 이름을 특대활자로 실었습니다. 윤봉길의 홍구공원 의거를 역사 교과서로 볼 때는 의미가 있는 사실만을 접하다 보니 뿌듯함이라든가 슬픔이라든가 이런 감정들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백범일지는 김구가 직접 독립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썼기에 자세하게 쓰여 있고 그 당시의 모습을 잘 보여주기에 책 속으로 빠져들어서 감정을 느끼며 읽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백범일지속 나라를 위해 독립운동을 하는 윤봉길의 모습은 용기 있고 대단해 보였습니다. 나라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을 던져보았으나 답은 바로 나왔습니다. 스스로에게 실망스럽지만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져버리면서 까지 나라를 위해 바치는 무조건적인 충성을 보여주는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은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지금의 우리나라의 배경에는 이들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 강인한 어머니 -

독립운동을 할 때는 여러 갈래의 저항이 있습니다. 윤봉길, 이봉창처럼 무력으로 저항을 한 사람들도 있지만 글로써 일본에 맞선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항쟁이든지 위험하고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어떤 어머니가 아들에게 일본에 맞서 싸우라고 권 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자식을 위험한 곳으로 나가라고 하는 말은 정말 어려운 말입니다. 하지만 김구의 어머니는 김구가 총을 맞아 총탄이 몸에 박혀 심실 근처에 있던 총탄이 오른쪽 갈비뼈 쪽으로 옮겨와 있던 상황에서도 김구에게 한인의 총을 맞고 살아난 것이 일본인의 총에 죽은 것만 못 하네라고 합니다. 그리고 김구가 독립운동을 할 때 방해가 될까봐 아들을 데리고 조선으로 갑니다. 아들이 독립운동을 할 수 있도록 말을 해주고 도와주는 어머니의 모습은 정말 대단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김구가 독립운동을 하며 이름을 남기고 뜻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강인함 덕분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강인함을 생각하면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4월부터 자전거를 가족들과 다 같이 타기 시작한 일이 떠오릅니다. 그러다가 국토종주에 도전하기로 했고 강원도 200km를 하루에 80km23일 동안 탔고 한강 70km도 스탬프를 찍었습니다. 지금까지도 국토종주 도전은 틈틈이 연휴나 주말마다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자전거 30km 타는 것이 정말 너무 힘들고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엄마한테 타기 싫다고도 해 보았고 그만하자고도 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오히려 계속 해야 한다고 하셔서 초반에는 억지로 탔습니다. 너무 힘들었을 때 그 고비를 넘기니 이제 웃으면서 자전거를 하루에 80km는 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강원도에 갔을 때 오르막 내리막이 많은 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비를 맞으며 탔던 그 자전거 길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비 오는 자전거 길에서 시원한 비를 맞으며 바다 옆을 달리는 경험은 특별한 경험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시작은 너무 힘들었으나 뒤에는 자전거를 타며 체력을 기를 수 있었고 학업 스트레스도 떨칠 수 있었습니다. 보통의 어머니는 딸에게 그만해도 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만하려는 저를 이렇게 계속하게 만든 것은 어머니의 강인함이 덕분이었습니다.

 

- 뜻이 서로 달랐던 독립운동 -

백범일지속에서 중요한 순간에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누군가가 뜻을 다르게 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통일회의를 하던 중에 민족혁명당 대표 김약산이 탈퇴한다.’ 고 선언하여 통일 회의는 결렬되었습니다. 이후 김구는 3당 동지들과 미국 하와이의 각 단체에 대해 사과하고 통일 회의를 계속해서 열어 한국독립당이 탄생하게 하고 한국광복군사령부를 설치했습니다. 통일 회의가 결렬되는 모습을 보면서 뜻이 모이지 않는 모습이 답답했습니다. 저렇게 사람들의 뜻이 모이는 게 힘든데 김구처럼 여러 명의 뜻을 모은다는 게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가 탈원전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찬성과 반대로 나뉘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분명 원자력 발전소는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사람들에게 아주 위험한 것이 확실 합니다. 그때 모두 모여서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들을 발표하고 질의응답을 통해 의견을 모으는 모습을 보며 우리나라도 탈원전이 될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만약 지금당장의 탈원전이 무산되더라도 반대 측과 찬성 측의 의견을 절충해서 차근차근 탈원전을 하기위한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두 의견의 충돌로 아무런 성과 없이 탈원전이 마무리되는 모습을 보며 중요한 순간에 뜻이 달라 무산되는 것을 보며 안타깝고 우리나라도 탈원전이 되기를 하루빨리 바래왔던 사람으로서 실망스러웠습니다. 중요한 나라의 정책을 결정 하는 것뿐만 아니라 주변에서도 의견이 달라 틀어지는 일이 있습니다. 저는 친구들과 여행 갈 곳을 정하면서 서로 의견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서로 이야기하면서 의견을 조율하려 했습니다. 그때 서로가 언성을 높이지 않았다면 좋았겠지만 다들 각자 생각했던 일이 틀어지자 감정이 상해서 다투었던 적이 있습니다. 물론 바로 화해는 했지만 그렇게 여행도 무산이 되었습니다. 그때 서로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이야기를 했다면 의견을 절충해서 여행지도 고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그때만 할 수 있었던 추억을 쌓을 기회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생각해보면 아쉬운 점이 많이 남습니다.

 

- 끈기와 노력으로 일본에 항쟁한 신봉빈과 문정숙 -

우리는 조선과 대한제국,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에게 많은 억압을 받아왔습니다. 백범일지속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상덕포로수용소에는 한인포로가 30여명이고 일인은 수백 명인데 모두한테 섞여 있어서 포로로서도 한인은 일인의 지휘를 받게 되어있었다. 일인이 명령지도하고 모든 일에 일인의 권리가 많다일본의 억압은 일제강점기와 조선과 대한제국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독립운동을 할 때 많은 이야기를 들어봤지만 그 당시 포로수용소의 모습은 한 번도 생각을 해 본적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포로수용소 안에서까지 일본인에게 억압받는 한국인의 모습을 생각하자 읽으면서 화가 났습니다. 그중 포로수용소에서 신봉빈은 일인의 지휘와 간섭을 거부하고 유창한 일어로 항쟁했다고 합니다. 수용소 속의 많은 일인에 반발하여 수용소에서 항쟁을 한 신봉빈의 모습은 가장 당당하고 바른 모습을 한 한민족일 것 입니다. 백범일지속에서 일인에게 항쟁하는 신봉빈의 모습은 기억에 많이 남는 장면입니다. 신봉빈이 나라를 위했던 것처럼 또 다른 나라를 위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관부재판을 진행했던 문정숙 사장입니다. 문정숙 사장은 부산에서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었기에 유창한 일어로 일본에 항쟁했습니다. 위안부, 정신대 신고 센터를 열어서 총 10명의 원고와 13명의 변호인들과 함께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오고가며 관부재판을 했습니다. 이 재판을 받기위해 23번을 오고갔고 20억이라는 많은 돈이 바닥이 났다고 합니다. 이 재판이 의미 있는 이유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많은 재판을 했지만 관부재판만이 유일하게 일본에 대해 일부 승소를 받아낸 재판이기 때문입니다. 신봉빈이 포로수용소라는 열악한 환경에서 항쟁을 했던 것도 대단하지만 엄청난 경제적 지원을 하며 일본에 맞선 문정숙 사장도 대단하고 생각합니다. 이런 부당한 상황이 오면 먼저 나서서 바꾸려 해야 하는 게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과 지식인의 역할일 것입니다. 저 또한 부당함이 있을 때 부당함이나 억울함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일제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 민족은 정말 많은 노력을 했고 힘든 순간이 올 때마다 견뎌내어 독립이라는 목표를 향해 계속해서 나아갔습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독립운동가들의 노력과 끈기의 결실일 것입니다. 김구 선생님은 총을 맞아가며 항쟁했고 신봉빈과 같은 사람들은 유창한 일어로 항쟁했으며 이봉창, 윤봉길 의사들은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이렇게 끈기와 노력을 하고 그 끝에 광복이라는 결실을 맺은 모습을 보며 나도 끈기와 노력을 한 적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노력과 끈기로 노력했던 일들 중 설악산에 갔던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설악산에 갔을 때 대피소에 자리가 없어서 예약을 하지 못했고 가족들과 상의 한 끝에 코스를 조금 줄여서 하루 일정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산행을 했고 새벽 3시에 올라가서 오후 7시에 내려왔습니다. 그때 오래 걸었더니 동생이 발목을 아파해서 아빠가 동생과 함께 오고 제가 아빠의 큰 배낭을 짊어지고 걸었습니다. 아빠와 동생은 천천히 내려오고 엄마와 저는 먼저 차가 있는 쪽으로 가는데 그날이 덥고 습한 날씨여서 어깨를 짓누르는 가방이 더욱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을 넘으니 발걸음이 가볍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다가 큰 절벽사이에 있는 계곡 옆을 지나게 되었는데 소나기를 만났습니다. 비 덕분에 안개가 껴서 정말 그 바위들과 계곡과 소나무의 모습이 산수화의 한 폭 같았습니다. 저는 그때 정말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올라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 그 풍경은 정말 보기 드문 풍경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설악산을 갔던 경험은 대단하고 희귀한 경험일 것이라 확신합니다. 설악산을 갔던 경험은 제가 했던 일들 중에 가장 힘들었고 가장 노력했던 일중에 하나입니다. 설악산은 정말 힘들었지만 가장 뿌듯했던 경험입니다. 힘들 때, 지칠 때마다 끈기를 주었던 원천이었고 앞으로도 제게 큰 힘이 되어줄 경험일 것입니다. 비록 저는 나라를 위한 것은 아니었지만 저에게는 가장 노력했고 뿌듯했던 경험입니다.

 

- 글을 매듭지으며 -

백범일지는 김구 선생님과 마치 실과 바늘처럼 김구 선생님의 이야기가 나오면 빠지지 않고 꼭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백범일지는 초등학교 역사시간부터 매년 역사시간마다 정말 많이 들어봤지만 딱딱하고 즐겁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도서관 책꽂이에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서 다른 즐겁기만 한 책을 읽고는 했었습니다. 이번에도 책을 받았을 때 엄두가 나지 않아서 항상 몇 쪽 읽고 다시 덮고 다시 몇 쪽 읽고 덮고 해서 읽다가 지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이고 어느 정도 읽다보니 백범일지에서 와 닿는 사실들이 너무 신기하고 새로워서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빨라진 것 같습니다. 백범일지를 읽으면서 책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던 스스로가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이번을 계기로 책을 읽는 다양성과 스스로의 틀을 깬 것 같아서 읽고 나서 뿌듯했고 백범일지를 보며 독립운동에 관심이 생기고 확장되어 우리나라의 기반에 관심이 생기고 더욱 나아가 정치에도 관심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백범일지가 우리와 관련이 없다고 생각 할 수도 있지만 우리의 세상과 정말 많은 관련이 있습니다. 특히나 백범일지는 지금의 우리나라의 기반을 마련했던 그때의 치열하게 희미한 빛을 향해 나아갔던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을 잘 담고 있는 책입니다. 보이지 않는 희미한 빛을 따라 나아가는 길이 험준하다 하더라도 꿋꿋이 나아가는 모습은 우리가 정말 본받을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대한민국의 국민인 우리는 이런 역사를 알기에 촛불시위로 흔들리는 나라를 국민의 힘으로 지켜내었습니다. 촛불로 지켜내었던 우리의 대한민국을 또다시 기무사 계엄령 문건과 같은 문서로 5.18민주화운동 당시와 같은 일들이 반복될 수도 있었습니다. 계엄령을 내린다는 것은 박정희 때 쿠데타와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국민들을 탄압하고 억압하는 일이 두 번 다시는 반복되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독립운동가들이 피와 땀으로 지켜낸 한반도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후퇴하려 할 때 우리가 스스로 나서서 잘못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된 것을 알려면 역사를 알고 과거에 어땠는지를 알고 현재를 보면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흥미 위주의 책도 좋지만 역사나 우리나라에 대해 한층 더 알 수 있는 백범일지와 같은 책을 읽어야하는 것이라고 책을 보며 느꼈습니다. 책을 읽을 때 우리와 연관 지어 읽는다면 조금 더 세상과 가까워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넓은 눈으로 세상을 보기 위해 우리는 책을 읽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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