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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 > 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대회
| 제목 | 믿음으로 살리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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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김하린(이화여고) | 개최일 | 2024-06-05 | 조회 | 22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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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살리라> 이화여자고등학교 1학년 애반 김하린 2024년은 우리나라가 독립을 맞은 지 79주년이 되는 해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80주년을 앞둔 현재, 우리는 독립을 이루었는가. 300만 명에 달하는 독립운동가들의 단 하나의 염원, 자주독립 속에 우리는 살고 있는가. ‘백범일지’는 백범이 황해도 해주 텃골에서 태어난 순간부터 일본의 항복 이후 고국으로 돌아와 삼남 순회와 서부 지방 순회를 마치는 순간까지의 이야기가 작성된 글로, 독립운동에 대한 그의 계획과 목표를 담고 있어 민족주체성의 교본이라는 평을 받는다. 특히 하권의 뒷부분에 실린 ‘나의 소원’은 그가 생각하는 민족통일의 의미, 주체적 독립을 위해 우리가 내딛어야 할 발걸음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글이었다. 나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가르치고 이끌었던 김구 선생님의 유일한 저서인 ‘백범일지’를 읽고 한 편의 글을 쓰며 선생님에게 본받을 점을 생각해 보았다. 첫째는 ‘마음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이다. 그는 어렸을 때 공부를 하여 과거시험을 보면 양반처럼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가진 머리의 힘보다 돈이 우선시되는 당시 상황을 몸소 깨닫고 공부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관상 좋은 사람이나 주변에 선한 이가 많은 사람보다 ‘마음 좋은 사람’이 되고자 결심하였다. 처음에는 그 스스로도, 글을 읽는 나도 마음 좋은 사람이란 무엇이며 그런 이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해야하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치하포에서 21세의 그가 했던 말을 통해, 나는 마음 좋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깨닫게 되었다. 마음 좋은 사람이란 다른 사람들, 더 나아가 국가의 것을 공감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마음으로 보아 옳다고 생각되는 행동을 주저 없이 행하는 사람이었다. 이러한 점을 깨닫고 나는 어린 시절 그의 결심을 본받아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또한 어려서부터 내가 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고민하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나는 늘 “의사”, “선생님”처럼 특정한 직업을 갖는 사람만이 되고 싶어했던 것 같다. 이제는 현실적인 삶을 유지해주는 것들(글공부, 풍수지리, 관상학)보다도 삶을 빛내는 것들(좋은 마음) 가운데 어떤 것을 지니고 살아갈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힘든 고통을 견뎌내는 의지이다. 그는 안명근의 행동으로 1911년 생애 세 번째로 투옥되었다. 그리고 유치장에서 고문, 금식, 온화한 수단 등의 혹독한 유혹을 맞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드센 바람에 억센 풀을 알고 국가가 혼란할 때 진실한 신하를 안다”는 옛 가르침을 떠올리며 견뎌내었다. 또한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면서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생활할 때에도 조국의 독립만을 떠올리며 매일 매일의 고통을 견뎌냈다. 이와 관련된 부분들을 읽을 때 그의 의지를 본받아야겠다고 다짐한 것은 바로 자신의 직접적인 이익이 아닌 국가의 미래를 바라보며 고통을 이겨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독립을 향한 그의 열정과 믿음을 느낄 수 있었다. 현재의 대한민국을 사는 나에게 있어서 죽음이 느껴지는 고통이 찾아올 때 나의 이익보다 먼저 생각나는 것은 무엇일지 생각해보고 사랑과 우정이라는 뻔하디 뻔하지만 누구나 선택하기는 어려운 답이 가지는 의미를 느껴보는 기회가 되었다. 셋째는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다. 독립운동이라는 위험하고 어려운 일을 일평생 한 만큼 그의 삶에는 수많은 위기가 있었다. 동학의 접주로 활동할 때 다른 접주에 의해 공격받았던 일, 치하포에서 배가 빙산에 포위되었던 일, 한국국민당 조직 이후 자다가 일어났더니 누워있던 방의 천장이 무너져내렸던 일 등 셀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죽음의 위협을 매번 이겨내었고 살아남았다. 나는 그가 그런 위기 속에서 살아남은 것은, 사형 집행이 확정되었을 때조차 태연하게 하루를 살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그와 늘 함께 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어머니도 실제로 “자네의 생명은 상제께서 보호하시는 줄 아네. 사악한 것이 옳은 것을 범하지 못하지”라고 말하였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실제로 고전 소설처럼 전기적이라는 느낌이 들었고 그것이 과연 하나님과 함께였기에 그랬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나의 삶에도 항상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고, 믿지 못하고 의심하였던 지난 몇 주, 몇 달, 몇 년의 나를 반성하였다. 이에 반해 그는 늘 하나님께서 그를 지켜주신다는 것을 믿고 있었고, 그로 인해 더욱 전략적이고 거침없는 독립운동 활동이 가능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하나님과 함께한 그의 삶이 나의 삶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들었다. 이 책을 중간 정도 읽었을 때, 김구 선생님의 묘가 집과 가까운 효창공원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굳이 갈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가까워지고 그의 헌신과 우리 국민에 대한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게 되자, 그분을 뵙고자 시간을 낼 수밖에 없었다. 효창공원 바로 옆에 있는 백범김구 전시관에서 선생님의 이야기를 살펴보며 책에 담겨있던 여러 표현들을 다시 돌아보고, 책에는 없던 다양한 그의 조각상과 사진들을 통해 새삼스레 김구 선생님께서 정말 우리나라에 존재했던, 그리고 우리나라를 존재하게 한 사람이었음을 온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전시관을 나와 계단 몇 개를 오르면 직접 볼 수 있었던 선생님의 묘는 선생님이 살아생전 풍겼을 위엄과 존엄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과 재잘거리는 새들의 울음소리가 치열하고 위험천만했던 그의 삶이 이제는 평안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했다. 백범일지를 읽으며 나는 우리 민족의 지도자이자 겨레의 큰 스승, 김구라는 사람의 삶을 살펴보고 또한 우리나라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었다. 아픈 과거라는 평은 어쩌면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할 수 있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 시기를 살았던 수많은 독립유공자들에게는 그 과거가 위기이자 기회인 최후의 순간이었을지 모른다. 좌절과 타협으로 떵떵거리는 것이 아닌 희생과 헌신으로 삶을 개척한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오늘도 대한민국이라는 땅을 밟고 살아간다. 적어도 앞으로의 삼일절, 광복절에는 오늘날 우리말을 하고 한글을 쓰고 한복을 입고 태극기를 바라볼 수 있도록 우리나라를 지킨 그들을 더욱 기억하며 하루를 사는 내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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